이로써 우리가 그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요한일서 2:2-4
2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3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그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4 그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서론
지난 주일에 이어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볼 하나님의 말씀은 요한일서 2장 2절에서 4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지난 주일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보내신 목적은 그를 믿는 모든 자들의 죄를 대신하여 고난을 받고 죽으심으로 정죄하심을 받을 뿐만 아니라 그들 안에 거하시는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거룩한 삶을 살 수 있게되는 능력과 갈망을 갖게 되는 것임을 배웠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하나님의 도덕법의 요구를 무시해도되는 무법자가 아닙니다. 구원은 참으로 은혜입니다. 그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는 은혜이며 하나님의 거저 주시는 이 은혜의 본질적인 부분 중 하나는 이 땅에서 경건하고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는 능력을 신자들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킴으로써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자 하는 마음이 없는 소위 은혜는 전혀 하나님의 참된 은혜가 아닙니다. 우리가 이전 메시지에서 배웠듯이,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속죄의 고난과 죽음으로 죄에 대한 죄책감으로부터 용서를 받았고 그 안에 내주하시는 그리스도의 영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도덕법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은 사람입니다. 이에 대해서 신학자 존 스토트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도덕법은 우리를 위해 폐지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우리 안에서 성취되어야 합니다. 율법의 순종이 칭의의 근거는 아니지만(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습니다), 율법의 순종은 칭의의 열매이며 성화의 의미입니다. 거룩함은 그리스도를 닮는 것이고 그리스도를 닮는 것은 율법의 의를 이루는 것입니다. (존 스토트, 로마서)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거룩한 삶을 살고자 하는 마음이나 염려가 없는 무법한 사람이 결코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도덕법에 순종하고자 하는 성령이 주신 열망과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점점 더 일관성 있고 깊이 있게 순종합니다. 이것이 성화의 의미입니다. 그러나 성화는 이 땅에서 결코 완성되지 않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죄를 짓고 또 죄를 지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전 본문에서 배웠듯이 신자들은 죄를 짓게될 때 그들의 고백과 통회함을 통하여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을 받을 것이라는 큰 위로와 확신을 받습니다. 신자들은 이것을 확신할 수 있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아버지 면전에서 우리의 대언자이시며 우리를 변호해주시기 때문입니다. 무죄를 선고할 근거가 없다는 것은 우리의 주장이 약하고 변호인의 간청이 절박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2절은 진정으로 거듭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죄가 용서받는 것에 대하여 반석과 같은 근거를 가지고 있음을 보증하고 있으며, 그들의 대언자이신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의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확신을 가지고 그들을 변호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줍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무죄를 선고받았음을 알 수 있는 근거는 무엇입니까?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시니...”(요일 2:2)
참으로 거듭난 신자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으로 인해 거룩한 삶을 살기를 갈망합니다. 참으로 거듭난 신자는 하나님의 도덕법을 지키는 것을 구원받을 수 있는 근거로 삼거나 자신을 정당화시키기 위해서가 아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 위해 하나님의 도덕법을 지키는 것을 받아들입니다. 참으로 거듭난 신자에게는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의 은혜가 그들로 하여금 무법적으로 살게 하지 않고 성화의 삶을 살게 합니다. 이것이 실제로 우리 자신을 설명한다는 것을 우리도 영적인 확신을 가지고 확증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어떤 죄는 우리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며, 우리는 하나님께 우리의 죄를 고백하기 위해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을 주저합니다. 요한일서 2장 1절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아버지께 우리의 용서를 위해 변호하는 우리의 대언자이심을 보증합니다. 2절은 의롭고 거룩하신 하나님 보시기에 우리가 논쟁의 여지가 없기 때문에 우리를 용서하심이 확실하다고 확신합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메시지의 첫 번째 요점으로 돌아가서 우리의 의로움의 근거요 능력이신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합시다.
2. 그리스도의 변호의 근거 (2절)
본문 2절 말씀입니다.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예수님께서 우리의 대언자로서 우리를 변호하실 때, 오늘 본문은 그 분이 결코 아버지께 타협을 해주시거나 우리에게 관대함을 보여주시기를 요청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는 결코 우리 죄의 심각성을 경시하거나 우리의 죄를 변명하기 위해 정상 참작이 가능한 상황을 지적하지 않습니다.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의 변호의 근거는 오직 한 가지입니다. 그분은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십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희생의 사역을 우리의 무죄 판결의 근거로 제시하시고 하나님의 공의를 우리의 무죄 판결의 근거로 제시하십니다. 아버지께서 믿는 자들의 죄를 용서해 주시도록 그리스도께서 변호하는 것이 정당한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그 분을 믿는 모든 사람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거룩한 진노를 온전히 짊어지심으로써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공의의 요구를 완전히 이루셨습니다.
우리 죄에 대한 합당한 형벌이 그 분께 주어졌고 우리 죄에 대한 정당한 값이 완전히 지불되었습니다. 우리의 죄로 인해 받아야할 정당한 형벌은 영원하며 의식적인 고통 속에 사는 것을 선고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5장 46절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이것을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또는 마가복음 9장 48절에서 예수님은 지옥을 죄인들을 위한 장소로 묘사하셨습니다.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는 곳”입니다. 사람들은 지옥의 영원한 형벌을 불공평하다고 비난합니다. 그들이 받아야하는 이 형량이 저지른 범죄에 비해 적합하지 않다고 분노합니다.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반역에 의해 무감각해지고 죄로 인해 죽은 자들, 인간의 악한 활동의 끔찍한 수렁과 마음의 끔찍한 상태에 익숙해진 자들, 눈이 멀어 하나님의 위엄, 영광, 오래 참음, 선하심, 탁월하심과 위대하심을 보지 못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 가혹하고 극단적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과 복음의 증거를 위하여 죽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은 영원한 형벌을 전혀 상관하지 아니합니다. 그들은 오히려 그것을 위해 외치고 있습니다. “그들이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신원하여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 하니”(계 6: 10) 놀라운 것은 영원한 형벌을 받는 것의 정당함을 천국에 있는 성도들의 영혼뿐 아니라 심지어 지옥에 갇힌 영혼들도 이를 인정한다는 점입니다.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에서, 무자비한 부자의 영혼이 나사로와 함께 멀리 떨어져 있는 아브라함에게 부르짖을 때, 그는 그의 형벌의 불공평에 대해 언급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자신이 겪는 고통이 그의 형제들이 회개하도록 경고를 받기를 원하기 때문인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르되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그들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이르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눅16:29-31)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견디신 것은 하나님의 공의, 즉 죄인에게 영원한 진노를 쏟아 부어야 하는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십자가에서의 약 6시간 동안에 하나님의 공의가 이루어졌고 그의 아들을 믿는 모든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받으심으로 우리를 속죄해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당하신 고난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 당하신 육체적 고통은 그 분의 고난의 빙산의 아주 작은 일각에 불과했으며 그 분이 당하신 영적 고통의 크기에 비하면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얼마나 많은 고통을 당하셨는지는 우리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지만, 그분이 우리 죄의 값을 완전히 치르셨고 하나님의 공의가 이루어졌다는 것은 압니다. 그분은 그분을 믿는 모든 사람의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시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대언자가 되실 때 하나님께 우리의 죄를 관대하게 봐주시고 또 한 번 기회를 주시기를 구하시지 않습니다. 그분은 우리 죄의 용서를 위해 하나님의 공의에 호소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한일서 1장 9절에서 이렇게 우리에게 보증해주고 계십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요일 1:9) 그리고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기 때문에 그의 아들을 믿는 모든 사람의 죄를 확실히 용서해주십니다.
본문 2절은 “온 세상의 죄를 위하는” 화목제물이신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는 아무도 하나님의 용서를 얻을 수 없음을 분명히 합니다. 그리스도의 희생적 사역으로 받게되는 ‘화목’은 진정으로 그리스도께로 돌이켜 죄에서 구원받기 위해 그를 믿는 모든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이런 의미에서 그리스도는 온 세상의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십니다. 2절은 본질적으로 사도 베드로가 사도행전 4장 2절에서 그리스도 예수에 관해 선언한 것과 동일한 진리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행4:12)
2. 그리스도와의 참된 교제의 시험 (3-4절)
본문 3절과 4절 말씀입니다.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그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그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예수님을 우리의 대변자로 모시고 우리 죄에 대한 하나님의 용서가 보장되어 있음을 아는 것은 최고의 축복입니다.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되신 그리스도의 희생하심으로 하나님의 공의가 만족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과 화목하고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하는 것이 모든 축복 중에 최고의 축복인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구원의 축복은 오직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참된 마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믿음을 통해서만 받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들의 신앙고백이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에 대한 특정한 사실에 대한 인지적 이해와 그러한 사실에 대한 지적 동의에 국한된 일종의 피상적인 믿음인데도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믿는 것에 대해 얼마나 유창하게 말합니까? 개인적이며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그리스도 안의 깊은 신뢰는 구원받는 믿음의 두드러진 특징입니다. 우리 삶의 주인이신 그리스도 예수를 하나님으로 영접하고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거듭나야 가질 수 있는 진심어린 신뢰와 믿음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본문 3-4절은 그리스도 예수를 알고 그와 교제를 누린다는 사람의 주장이 참된 것인지를 시험하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3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로써 우리가 그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우리가 그 분을 안다는 것을 무엇으로 알 수 있는가? 우리가 진정으로 그분에 의해 구원을 받았고 그분께 속해 있다는 확신을 무엇에 근거하여 찾을 수 있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알고 있다는 확신을 자신이 체험한 확실하고 신비로운 경험을 근거로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는 음성을 들을 수 있다고 생각했거나, 갑자기 방언으로 말하는 것과 유사한 어떤 현상을 경험했다고 생각했거나, 예수님께서 자신을 영접해주시거나 사랑해주시는 어떠한 압도적인 감각을 느꼈거나, 천사가 나타나는 생생한 꿈을 꾸었다고 말하기도 하고, 예수님이나 예수님을 닮은 누군가가 그들에게 나타나 특별한 계시의 말씀을 전했다고 하기도 합니다. 어떤 강렬하고 신비로운 경험 때문에 일부 사람들은 자신이 예수님과 교제를 누리고 있다고 확신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신학 연구에 높은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안다고 확신합니다. 물론 우리가 주님에 대한 사랑과 그분의 뜻에 성화된 순종으로 성장하려는 열망에서 신학을 공부할 때 신학을 공부하는 것은 귀중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남북 전쟁 역사나 톨킨의 중간계에 대한 지식에 큰 관심을 보이는 것과 같은 태도로 신학에 큰 관심을 보입니다. 신학에 매료되어서 다양한 신학적 주제에 대해 잘 안다는 큰 자부심을 갖고, 다양한 신학 논쟁과 문제에 대해 동료들로부터 전문가로 인정받는 것을 즐깁니다. 그들은 이러한 논쟁과 문제를 다른 사람들과 토론하는 데 만족합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예수를 매력적인 학문의 대상으로 삼는 것을 그리스도를 주로 아는 것과 혼동하여 그 분과 교제하고 있음을 확신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많은 일에 참여했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안다고 스스로 확신합니다. 그들은 매주 많은 참석자와 방문객을 끌어들이며 성장한 교회를 개척하는 데 크게 관여했습니다. 그들은 특정 기독교 단체에 많은 시간과 정력을 쏟아 부었고 지도자와 중요한 사람으로 간주됩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행한 이러한 일들은 숫자, 돈, 평방 피트 수를 기준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들의 능력을 근거로 하여 자신이야말로 그리스도의 나라 안에 들어가는 자인 것을 확신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알게 되었다는 것을 아는 방법은 단순히 이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즉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확실히 어떤 사람은 확실하고 강렬한 신비 체험을 하고 신학과 기독교 교리에 대한 학문적 관심이 크고 세속적 관점에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인상적인 일을 하고도 여전히 무법적인 삶을 살고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전 메시지에서 배웠듯이,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보내어 우리를 대신해 고난을 받고 죽게 하신 목적은 우리의 칭의일 뿐만 아니라 우리가 거룩한 삶, 즉 우리가 성화의 삶을 살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좇지 않고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라 .” (롬 8:3-4)
우리가 그리스도를 알게 되었다는 것을 아는 방법은 - 우리가 거듭나는 것입니다. 오래된 돌과 같은 마음이 제거되었습니다. 죄가 지배하고 마귀에게 매여 있던 마음이 제거되었고 그 대신에 새 마음을 받았습니다. 곧 하나님의 의에 주리고 목마른 마음이요,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통해 죄의 오염과 죄책감에서부터 구원받기를 사모하는 마음입니다. 죄에서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길을 받아들이는 마음, 죄의 더러움을 미워하고 거룩해지기를 사모하는 마음입니다. 이 새 마음을 받은 자만이 그들의 죄에서 구원을 받기 위해 예수님께로 돌아오고, 그들이 죄로부터 구원받기 위해 그분께 돌이키므로, 그들은 그들의 죄에 대한 정죄함으로부터의 구원을 받게 되며, 성령의 능력으로 그들의 죄를 대적하고 이기게 되며 거룩한 순종의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사람이 중생과 성화의 은혜를 경험할 때만이 그들의 믿음이 하나님에 의해 그들 안에서 생겨났고, 그들의 회심이 실제적이며, 그들이 그리스도 예수께 속해 있어 그 분과 참된 교제를 누리고 있다는 확신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본문은 중생과 성화의 은혜가 사람의 삶에 없다면, 사람이 거룩한 삶을 살고자 하는 열망을 나타내지 않는다면, 그래서 일상 생활에서 그리스도의 계명과 하나님의 도덕법의 인도를 무시하고 성경의 도덕적 권위를 없이하려 한다면, 아무리 그리스도를 안다고 주장해도, 아무리 생생하고 신비로운 체험을 한다해도, 아무리 신학과 교리에 관심이 많다고 해도 그는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한 그의 업적이 아무리 인상적으로 보인다고 해도 말입니다. 본문 3-4절은 마태복음 7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경고의 반복입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7:21-23)
그러나 이러한 분명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사람들이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을 조롱하고, 하나님 말씀의 도덕적 권위를 멸시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죄를 짓지 않고 죄를 지을 자유를 준다고 주장하는 것을 얼마나 자주 보고 있습니까. 나는 그러한 소위 그리스도인들이 언젠가는 자기가 안다고 생각했던 그리스도 예수의 입에서 가장 가슴 아픈 말을 듣게 될까 두렵습니다.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성도 여러분, 만일 오늘날 우리가 불법의 가르침을 기웃거리며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방탕한 것으로 바꾸는”(유1:4) 사람들과 교제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성결의 삶을 산다는 관념을 비웃으면서 그리스도 안에서 행한 위대한 업적을 숭배하는 지도자들과 교사들의 미혹을 좇고 있다면, 회개하고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돌아오십시오. 우리가 계속 거역하고 불법의 길로 성결의 복음을 버린다면 그리스도께서 언젠가는 우리를 결코 알지 못하셨다고 말씀하실 것임을 아십시오.
How We Know That We Have Come to Know Him
1 John 2:2-4
2 He is the propitiation for our sins, and not for ours only but also for the sins of the whole world. 3 And by this we know that we have come to know him, if we keep his commandments. 4 Whoever says “I know him” but does not keep his commandments is a liar, and the truth is not in him,
Introduction
I would like to remind everyone that we are continuing on with our series in 1 John, picking up where we left off in the second chapter of this epistle, moving on to verse 2 – 4.
If you recall from last week's message, we learned that the end for which God sent His Son was not only to bear the condemnation for the sins of all who believe in Him by suffering and dying in their place but also to grant the capacity and desire to live holy lives by the power of His Spirit who dwells in them. The Christian, therefore, is not a lawless person who dismisses the requirements of God's moral law on account of God's grace. Salvation is indeed by grace. It is from beginning to end the free gift of God and an essential part of His free gift is His granting unto believers power to live godly and holy lives in the present age. A so-called grace that does not incline a person's heart to please God by keeping His commandments is no true grace from God at all. A Christian, we learned in our previous message, is someone who has had his or her guilt in sin remitted by the atoning suffering and death of Christ and who has been granted the capacity to keep the moral law of God by the power of Christ's Spirit who lives in them. As John Stott put it so well:
“The moral law has not been abolished for us; it is to be fulfilled in us. Although law-obedience is not the ground of our justification (it is in this sense that we are ‘not under law but under grace’), it is the fruit of it and the very meaning of sanctification. Holiness is Christlikeness, and Christlikeness is fulfilling the righteousness of the law.” (John Stott, The Message of Romans)
The Christian, therefore, is never a lawless person who has no concern or desire to live out a holy life. A Christian has the Spirit-given desire and capacity to obey God's moral law and does so with increasing consistency and depth. This is the meaning of sanctification. But since sanctification is never perfected in this lifetime, Christians do sin and will sin. And, as we learned in our previous text, if they do sin, believers have the great comfort and assurance that their confession and contrition will be met with God's forgiveness and love. Believers can be certain of this because Jesus stands as our advocate in the presence of the Father and pleads our cause to Him. Having poor grounds for an acquittal means that our cause is weak and the plea of the advocate is desperate. But verse 2 assures all truly regenerated Christians that they have rock-solid grounds for the acquittal of their sins so that they may know that their Advocate, Christ Jesus, pleads their cause with confidence, in the presence of our holy God. What then is the grounds for our acquittal? “He is the propitiation for our sins,” (1 John 2:2)
A true, regenerated believer desires to live a holy live out of love for God. A true, regenerated believer embraces the keeping of God's moral law not as a way to merit salvation and justify himself but as the way to live in a manner that is pleasing to God. For a true, regenerated believer, the grace of Christ's saving work inclines them to live a life of sanctification rather than to live lawlessly. Perhaps we can confirm with spiritual confidence that this indeed describes us. And yet certain sins weigh on our hearts heavily and we hesitate to draw near to God in prayer to confess our sins to Him. Verse 1 of 1 John 2 assured us that Christ Jesus stands as our advocate who pleads the cause for our forgiveness to the Father. Verse 2 assures us that our forgiveness is certain because our cause is indisputable and strong in the eyes of a just and holy God. So, let's turn to our first point of today's message and unpack the strength of our cause: Jesus Christ, the propitiation for our sins.
Point 1 – The basis for Christ's advocacy (verse 2)
We read in verse 2 of our text, “He is the propitiation for our sins, and not for ours only but also for the sins of the whole world.”
When Jesus pleads our cause as our advocate, our text shows us that in no way does He ask the Father to bend His justice and exercise leniency toward us. He in no way down plays the seriousness of our sins, or point to the extenuating nature of our circumstances to excuse our sins. The basis for Christ's advocacy on our behalf is one thing alone: He is the propitiation for our sins. Jesus presents His sacrificial work as the basis of our acquittal and God's justice as the reason for our acquittal. It is just, Christ advocates, that God should forgive believers their sins because, “He is the propitiation for our sins...”. Christ has fully satisfied the demands of God's justice on the cross by bearing the full brunt of God's holy wrath against the sins of all who would believe in Christ.
The proper punishment for our sins has been dealt upon Him, the just penalty for our sins has been paid in full. The just punishment for our sins is an eternal sentence of conscious torment. Jesus makes this clear in several places including Matthew 25:46, “And these will go away into eternal punishment, but the righteous into eternal life.” Or in Mark 9:48, Jesus describes hell as a place for sinners “where their worm does not die and the fire is not quenched.” People rail against the eternal punishment of hell, decrying it as unfair. The magnitude of the sentence, they fume, does not fit the crime. For our minds that have been desensitized by the magnitude of human rebellion against God, that have been deadened to the evil of human sin, that have grown accustomed to the hideous mire of human activity and the appalling condition of the human heart and whose eyes are blind to the magnitude of God's dignity, glory, patience, goodness, and excellence, yes, the just judgment of God may appear severe and extreme. But the souls of those slain for the word of God and their gospel witness who are in heaven take no issue with eternal punishment at all. They instead are crying out for it: “They cried out with a loud voice, 'O Sovereign Lord, holy and true, how long before you will judge and avenge our blood on those who dwell on the earth?'” (Revelation 6:10) It may surprise us that it is not only the souls of believers in heaven who acknowledge the justness of eternal punishment but even souls who have been consigned to hell are able to acknowledge the same. In the story of the rich man and Lazarus, when the soul of the merciless rich man cries out to Abraham who is far off with Lazarus at his side, he makes no mention of the unfairness of his punishment. Rather, it is clear that he is aware that what he is suffering is just because he wants his brothers to be warned so that they may repent:
And he said, ‘Then I beg you, father, to send him to my father's house— 28 for I have five brothers—so that he may warn them, lest they also come into this place of torment.’ 29 But Abraham said, ‘They have Moses and the Prophets; let them hear them.’ 30 And he said, ‘No, father Abraham, but if someone goes to them from the dead, they will repent.’ 31 He said to him, ‘If they do not hear Moses and the Prophets, neither will they be convinced if someone should rise from the dead.’ (Luke 16:29-31)
What Christ endured on the cross was sufficient to satisfy God's justice – God's justice which requires an eternal outpouring of His wrath upon sinners. In a space of about six hours on the cross, God's justice was satisfied, His wrath against all who would believe in His Son was propitiated. We cannot comprehend what Jesus suffered upon the cross. It defies our imagination. The physical suffering of the cross was only the minutest tip of the iceberg of His suffering, completely dwarfed by the magnitude of His spiritual suffering - this bearing upon Himself the full outpouring of God's wrath for our sins which would otherwise be paid by us in hell forever. Although we cannot possibly comprehend just how much Christ endured upon the cross, we do know that He paid the price for our sins in full and the justice of God was satisfied. Because He is the propitiation for the sins of all who trust in Him, when Christ stands as our advocate, He does not ask for God to show lenience towards our sins and give us yet another chance. No, He appeals to God's justice for the forgiveness of our sins. That is why verse 9 of the previous chapter in this epistle assures us: “If we confess our sins, he is faithful and just to forgive us our sins and to cleanse us from all unrighteousness.” (1 John 1:9) And since God is true to His justice, He most certainly forgives the sins of all who believe in His Son.
Verse 2 of our text makes it clear that no person is able to procure the forgiveness of God except through Jesus, who is the propitiation “...for the sins of the whole world.” The propitiation of Christ's sacrificial work is available to all who truly turn to Christ and believe in Him for salvation from their sins. It is in this sense that Christ is the propitiation for the sins of the whole world. Verse 2 is essentially expressing the same truth which the apostle Peter declared concerning Christ Jesus in Acts 4:2:
“And there is salvation in no one else, for there is no other name under heaven given among men by which we must be saved.” (Acts 4:12)
Point 2 – The test of true fellowship with Christ (verse 3 – 4)
We read on from verse 3 – 4 in our text, “And by this we know that we have come to know him, if we keep his commandments. Whoever says “I know him” but does not keep his commandments is a liar, and the truth is not in him,”
It is the highest blessing to have Jesus as our advocate and to thereby know that God's forgiveness of our sins is assured. It is the highest of all blessings to enjoy reconciliation with God and fellowship with the Father and His Son, Jesus Christ because God's justice has been satisfied through the sacrificial offering of Christ who is the propitiation for our sins. Of course these blessings of salvation are received only through true, heart-felt faith in Christ Jesus. But how glibly people speak of believing in Christ when in reality their profession of faith is a kind of superficial believing that is limited to a cognitive understanding of certain facts of the person and work of Christs and an intellectual agreement with those facts. Missing is the element of personal, heart-felt trust in Christ which is the distinguishing characteristic of saving faith. Missing is the personal, heart-felt trust that receives Christ Jesus as God and Lord over our lives, the kind of faith that is only possible if a person is born again by the work of the Holy Spirit upon their hearts. So, verse 3 – 4 of our text is concerned with testing the truth of a person's claim of knowing Christ Jesus and enjoying fellowship with Him. We read in verse 3, “And by this we know that we have come to know him...” By what do we know that we have come to know Him? On the basis of what can we find certainty that we truly are saved by Him and belong to Him?
Some base their assurance that they know Christ because of certain, mystical experiences that have had. They thought that they heard Jesus's voice speaking to them audibly or they suddenly experienced some phenomenon that resembled speaking in tongues or they felt a sense of overwhelming acceptance and love which they attributed to Jesus or they had a vivid dream wherein an angel was purportedly sent by Jesus or someone who resembled Jesus appeared to them and imparted some special words of revelation. Because of certain intense, mystical experiences some feel assured that they enjoy fellowship with Jesus.
Others find assurance that they know Christ because they have a high degree of interest in studying theology. Studying theology is of course invaluable when we study theology out of love for the Lord and a desire to grow in sanctified obedience to His will. But some people display great fascination with theology with the same attitude that other people show great fascination in Civil War history or the lore of Tolkien’s Middle Earth. Theology fascinates them, they take great pride that they are well read on various theological subjects, they enjoy being regarded as an expert in various theological controversies and issues by their peers, they find satisfaction in discussing and debating these controversies and issues with others. They confuse their natural fascination with God and Jesus as academic subjects with knowing Christ as Lord and so they are certain that they are in fellowship with Him.
Others assure themselves that they know Christ because they have been involved in many impressive works in Jesus name. They have been heavily involved in planting a church which has grown to draw large numbers of attendees and visitors each week. They have committed a great amount of time and energy to certain Christian organizations and are regarded as leaders and important people within their ranks. Judged on paper on the basis of numbers, dollars, and square footage, these works they have done in Jesus' name would impress most people. So, they assure themselves on the basis of their mighty works, that if anyone is an insider in Christ's kingdom, it is them.
But our text asserts that the way that we know that we have come to know Christ is simply this: we keep his commandments. To be sure, a person may have certain, intense mystical experiences, take a great, academic interest in theology and Christian doctrine, and accomplish impressive works in Christ's name from an earthly standpoint and still lead a lawless life. As we learned in our previous message, the end for which God sent His Son to suffer and die on our behalf was not our justification only but also that we might live holy lives – our sanctification. “By sending his own Son in the likeness of sinful flesh and for sin, he condemned sin in the flesh, in order that the righteous requirement of the law might be fulfilled in us, who walk not according to the flesh but according to the Spirit.” (Romans 8:3-4)
This is how we know that we have come to know Christ – we are born again. The old heart of stone has been taken away. The heart which was dominated by sin and in bondage to the devil has been removed and in its place we have been given a new heart, a heart that is hungry and thirsty for God's righteousness, a heart that longs for deliverance from both the guilt and the pollution of sin through the saving work of Christ, a heart that is receptive to God's way of salvation from sin, a heart that hates the defilement of sin and yearns to be made holy. It is only those who are granted this new heart who turn to Jesus for salvation from their sins and because they turn to Him for salvation from their sins, they receive it: deliverance from condemnation for their sins and Spirit wrought power to resist and overcome their sins and live holy lives of obedience.
In other words, it is only when a person experiences the grace of regeneration and sanctification that they find assurance that their faith has been wrought in them by God, that their conversion is real, and that they belong to Christ Jesus, enjoying true fellowship with Him. But our text warns us that if the grace of regeneration and sanctification is absent in a person's life, if a person displays no desire to live a holy life, ignores the guidance of Christ's commandments and God's moral law in their daily living, and thus dispenses with the moral authority of scripture, such a person does not know Christ no matter how emphatic his or her claim to know Christ is, no matter how vivid his or her mystical experiences are, no matter how keen his or her interest in theology and doctrine happens to be, no matter how impressive his or her accomplishments done in the name of Christ appear. Verse 3 – 4 is a reiteration of Jesus' warning in Matthew 7:
21 “Not everyone who says to me, ‘Lord, Lord,’ will enter the kingdom of heaven, but the one who does the will of my Father who is in heaven. 22 On that day many will say to me, ‘Lord, Lord, did we not prophesy in your name, and cast out demons in your name, and do many mighty works in your name?’ 23 And then will I declare to them, ‘I never knew you; depart from me, you workers of lawlessness.’ (Matthew 7:21-23)
Yet despite these clear warnings, how often do we do we see self-identifying Christians who sneer at living a holy life, despise the moral authority of God's word, and assert that the grace of God gives them freedom to sin with impunity. I am afraid that such so-called Christians will one day hear the most crushing thing that anyone could possibly hear directly from the mouth of Christ Jesus who they presumed to know: “I never knew you; depart from me, you workers of lawlessness.”
My friends, if we are today flirting with the teachings of lawlessness, fraternizing with people “who pervert the grace of our God into sensuality” (Jude 4), and are straying after the seduction of leaders and teachers who venerate mighty works done in Christ's name while scoffing at the notion of living a life of holiness in obedience to God's word, repent and turn back to Christ's gospel. Know that if we persist in our rebellion and forsake the gospel of holiness for the way of lawlessness, then Christ will one day, at last, tell us that He never knew 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