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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화하는 은혜의 능력, The Power of Sanctifying Grace
설교자: 오수강 목사, Pastor Richard Oh
본문: 골로새서 4:10, Colossians 4:10
날짜: 2024-03-17

성화하는 은혜의 능력

 

골로새서 4:10

 

10 나와 함께 갇힌 아리스다고와 바나바의 생질 마가와 (이 마가에 대하여 너희가 명을 받았으매 그가 이르거든 영접하라)

지난 주일에 이어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볼 하나님의 말씀은 골로새서 4장 10절의 말씀입니다. 

 

여러분들께서 기억하시겠지만 현재 우리는 골로새서의 마지막 부분을 함께 살펴보고 있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골로새 교회에 사역하는 동역자들에게 문안을 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난 몇 주 동안 알아본 것처럼 사도 바울의 동역자들은 신약성서 안에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유명한 이들은 아니었지만 이런 덜 알려진 그리스도의 종들의 삶을 통하여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귀중한 교훈들이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두기고와 오네시모에 대하여 알아보았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아리스다고와 마가가 소개됩니다. 아리스다르고와 마가는 누구입니까?

먼저 아리스다르고를 생각해 봅시다. 이 인물에 대해 성경은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사도행전 19장에서 바울이 에베소에 지내며 3차 선교 여행을 하는 동안 아리스다고라는 이름을 처음 접하게 됩니다. 거기서 우리는 아리스다르고가 바울의 일행 중 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 무렵 바울의 사역은 에베소에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었습니다. 그 결과, 우상을 만드는 일을 하던 장인들은 에베소 사람들에게 미치는 복음의 영향력에 위협을 느꼈습니다. 이 장인들이 함께 모여 도시에서 폭동을 일으켰고 소란이 일어나는 동안 아리스다고는 폭도들에게 붙잡혀 극장으로 끌려갔습니다. 감사하게도 마을 서기관의 개입으로 아리스다고는 아무런 해를 입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사도행전 20장을 통하여 듣게 됩니다. 아리스다고는 바울의 예루살렘 여행에 동행한 일곱 사람 중 한 사람으로 언급되어 있습니다. 분명히 아리스다고는 바울이 로마에 투옥되어서 골로새서를 기록할 때도 여전히 바울 편에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은 아리스다고를 동료 죄수로 언급합니다. 이는 그가 위대한 사도의 사역을 계속 돕기 위해 바울이 가택연금 된 상황 가운데서도 바울과 함께 살기로 결정했다는 의미일 수 있습니다. 아리스다고는 힘들 때든지 어려울 때든지 자신의 청지기직에 충실한 믿음직한 그리스도의 종이었습니다. 제가 저의 아내와 결혼했을 때, 아내는 뉴저지 북부에 있는 아름답고 세련된 부모님 댁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허름한 아파트로 이사해야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거대한 바퀴벌레들로 인해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녀가 놀라서 바로 부모님 집으로 달려가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녀의 신실함을 말해줍니다. 물론 아내는 하나님 앞에서 결혼 서약을 했습니다. 아리스다고가 감옥에 갇힌 바울과 함께 살기로 결정한 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하나님 나라를 위한 바울의 동역자로서 그의 신실함과 성숙함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리스다고에 관해 수집할 수 있는 단편적인 정보와는 대조적으로 마가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비교적 잘 알려져 있습니다. 마가는 누구입니까? 마가는 바울의 첫 번째 선교 여행의 유명한 동반자였던 바나바의 사촌이었습니다. 바울과 함께 처음 동역했을 시기 그가 얼마나 불안정했는지를 생각한다면 마가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바울의 동역자로 선택되었다는 사실(골 4:11)은 주목할 만합니다. 바울의 1차 전도여행에서 바나바는 오늘 본문에 나오는 마가를 함께 데리고 갔습니다. 선교 여행 초기에, 알 수없는 이유로 마가는 바울과 바나바를 떠나기로 결정했습니다.

 

“...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이 바보에서 배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이르니 요한은 그들에게서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행13:13)

마가가 그들을 떠나버렸기 때문에 바울은 두 번째 선교 여행에 그를 다시 데리고 가는 것을 거부했고, 이로 인해 자신의 사촌에게 또 다른 기회를 주고 싶어했던 바나바와 충돌하게 되었습니다.

 

“...며칠 후에 바울이 바나바더러 말하되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한 각 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 하고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고자 하나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함께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하여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니며 교회들을 견고하게 하니라…” (행15:36-41)

 

마가에 대한 논쟁은 온화하고 차분한 논쟁이 아니었습니다.  날카로운 의견의 대립이 있었습니다.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가겠다고 고집했습니다. 바울은 절대 안된다며 이를 거절했습니다. 마가가 선교 여행을 떠난 이유는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아마도 그는 복음을 위해 박해를 당하며 목숨을 걸어야했던 것이 두려웠는지로 모릅니다. 여행의 어려움보다는 집의 편안함을 갈망했는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그는 바울과 어떤 종류의 충돌을 겪었고 상처받은 자존심으로 인해 그만두기로 결정했을 수도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든, 바울은 마가가 자신의 선교의 부름에 동참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판단했습니다. 마가에게는 바울의 사도적 사명의 어려움을 함께 헤쳐 나갈 수 있는 영적인 자질이 부족했습니다.

 

수년 후, 바울이 로마에서 골로새인들에게 서신을 썼을 때 마가는 달라져 있었습니다. 그는 더 이상 버가에서 바울과 바나바를 등지고 떠났던 미성숙한 신자가 아니었습니다. 수년에 걸쳐 마가는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과 사랑이 성숙해졌으며 이제 그는 사역에서 바울이 신뢰하는 동역자가 되었습니다. 마가는 더 이상 바울에게 문제를 일으키는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이제 바울은 마가를 자신에게 위로를 주는 사람으로 여겼습니다.

 

“...나와 함께 갇힌 아리스다고와 바나바의 생질 마가와 (이 마가에 대하여 너희가 명을 받았으매 그가 이르거든 영접하라) 유스도라 하는 예수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그들은 할례파이나 이들만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함께 역사하는 자들이니 이런 사람들이 나의 위로가 되었느니라…” (골4:10-11)

 

몇 년이 더 지나면 마가에 대한 바울의 평가는 더욱 빛을 발합니다. 바울은 또 다시 로마 감옥에 갇히게 되었는데 이번에는 감옥의 조건이 더욱 가혹해졌습니다. 바울이 처음 투옥당했을 때는 가택 연금의 상태로 상당한 자유를 얻었습니다. 이제 그는 죄수로 옥 안에 갇혀 있었습니다(딤후 2:9). 바울은 수많은 교회에서 버림받고(딤후 1:15) 자신에게 임박한 죽음을 바라보면서(딤후 4:6-7) 마가 요한에 관해 디모데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딤후4:11)

 

바울은 마가가 사역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싸웠습니다. 그러던 바울이 이제는 가장 어렵고 위험한 상황에서 마가를 자기 곁으로 불렀습니다. 왜냐하면 마가가 사역에 매우 유용한 사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의 성화시키는 능력에 대한 간증입니다. 마가가 처음으로 그와 함께 동역할 기회를 얻었을 때는 영적으로 미성숙했지만 바울은 그를 영원히 깎아내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마가의 초기 실패로 인해 그를 영원한 경계 대상으로 삼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만일 그리스도의 영이 마가 안에 거하신다면,  하나님의 교회에 대한 그리스도와 같은 희생적인 사랑으로 성숙할 것이며 언젠가 자신의 어려운 사역에 다시 합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면, 동료 형제들이 주님과 동행하는 데 있어서 중대한 실패나 결점을 가졌다는 이유로 그들을 폄하하는 일을 삼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로 돌아와 의롭다함을 받는 모든 사람은 그들의 거룩함을 위해 성령을 받기 때문입니다(고후 3:18). 그리고 그것은 평생에 걸친 성장과 성숙의 과정입니다(갈 5:22-23; 골 3:10).

 

저녁에 귀가하면 저의 네 살짜리 딸이 문 앞으로 달려와 환한 미소로 반갑게 맞아줍니다. 제가 잊어버리면 꼭 안아달라고 말합니다. 아침에 집을 나서 학교에 갈 때, 아이는 문 밖으로 나오자마자 제 손을 잡아달라고 합니다. 만일 몇 초간 지체하면 아이는 제가 왜 손을 잡지 않는지 물어봅니다. 저의 사랑하는 딸로서 아이는 저에게 부모님을 향한 애정, 의존함과 열린 마음, 그리고 신뢰의 근본적인 태도를 보여줍니다. 때때로 말을 듣지 않으면 아이를 옆으로 데려가서 꾸짖어야 합니다. 종종 징계를 필요로 하는 옳지 않은 행동을 보이기도 합니다. 딸은 자주 책망을 받아야 하고 때로는 징계가 필요할 때도 있지만 늘 저를 자기 아버지처럼,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으로 대합니다. 저는 항상 이 아이의 ‘아빠’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의 유익을 누리게 될 때, 우리의 죄는 즉시, 완전히 용서받고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갖게 된 우리의 새로운 지위를 확증하기 위해 복음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속에 보내셔서 우리가 하나님께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짖게 하신다고 가르칩니다 (갈4:6; 롬8:14-16). 이는 성령께서 우리가 참으로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하시고, 우리의 마음을 감동시켜 아버지를 향한 애정과 신뢰와 사랑의 자세로 하나님께 부르짖게 하시는 것을 가리킵니다. 미성숙한 신자들은 어린아이처럼 자주 책망을 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때때로 그들은 심하게 넘어져 우리에게 좌절을 주고 하나님의 징계를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연약함과 결점에도 불구하고, 모든 신자들은 아무리 미성숙하더라도 그들 안에는 양자의 영이 살아 거하시며, 그 영은 그들로 하여금 그들의 아바, 아버지이신 하나님께 부르짖도록 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참된 자녀는 진리의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자신을 계시하신 대로의 하나님을 향한 애정과 의존의 태도를 통해 알아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참된 하나님의 자녀는 양자의 영이 또한 그들을 그리스도와 같은 거룩함으로 점진적으로 변화시키는 성화의 영이기 때문에 그들이 일생 동안 성장과 변화의 과정을 겪고 있다는 사실로 인하여 참된 하나님의 자녀로 인식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의 미성숙한 형제들을 오래 참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들의 빈번한 실수나 눈에 띄는 실패 때문에 그들을 폄하해서는 안 됩니다. 대신에 우리는 양자의 영만이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자녀다운 애정으로 그들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를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비록 복음에 대한 이해가 기본적이고 초보적일 수 있어도, 그리스도의 보배볼운 피로 인하여 그들이 하나님의 가족의 일원이 되었기 때문에 그들은 담대함을 가지고 하나님께 “아빠! 아버지!" 부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믿음 안에서 이 작은 자들을 가르치고 권면할 때, 양자의 영께서는 또한 그들 안에 역사하시는 성화의 영이심을 기억합시다. 현재의 그들의 모습은 장차 미래의 그들의 모습이 아닙니다. 기다려 보십시오. 언젠가는 그들이 그리스도와 같은 사랑과 인내와 진리에 대한 지식 안에서 놀랍도록 성장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마가 요한처럼 주님의 사역에 매우 유용한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될 것입니다. 

 

 

 

 

 

 

 

The Power of Sanctifying Grace

 

Colossians 4:10

 

10 Aristarchus my fellow prisoner greets you, and Mark the cousin of Barnabas (concerning whom you have received instructions—if he comes to you, welcome him), 

 

I would like to remind everyone that we are continuing with our series in Colossians picking up where we left off last week in the fourth chapter of this epistle, moving on to verse 10. 

 

If you remember, we are currently working our way through the final section of the epistle to the Colossians where Paul conveys the greetings of his fellow workers in ministry to the church at Colossae. While these co-workers of the apostle Paul are not as prominent as more well-known people of the New Testament, as we have been finding out over the past few weeks, there are still valuable lessons that can be derived from the details of these lesser-known servants of Christ. So far we have been introduced to Tychicus and Onesimus. In today's text, we are introduced to Aristachus and Mark. Who are Aristarchus and Mark? 

 

First, let's consider Aristarchus. What can we garner from scripture about him? We first encounter Aristarchus in Acts 19, during Paul's third missionary journey while he was at Ephesus. There we find out that Aristarchus was one of Paul's traveling companions. By this time, Paul's ministry was having a profound effect on Ephesus. As a result, the craftsmen who were in the idol making business felt threatened by the influence the gospel was having on the people of Ephesus. Meeting together, these craftsmen sparked a riot in the city and during the uproar, Aristarchus was seized by the mob and dragged into the theater. Thankfully, no harm came to Aristarchus through the intervention of the town clerk and we hear next of Aristarchus in Acts 20, where he is listed among the seven men who would accompany Paul in his journey to Jerusalem. Apparently, Aristarchus was still be Paul's side when he penned Colossians while imprisoned in Rome. Paul refers to Aristarchus as his fellow prisoner which may mean that he chose to live with Paul while he was under house arrest so that he could continue to assist the great apostle in his ministry. Aristarchus was a dependable servant of Christ who was faithful to his stewardship through thick and thin. When I was married to my wife, Inyoung, she moved out of the refinement and beauty of her parent's home in Northern New Jersey and joined me in my shabby apartment an hour away which would shortly thereafter develop a problem with giant cockroaches. The fact that she didn't freak out and run right back to her parent's house speaks something of her faithfulness. My wife, of course, was bound by a marriage vow. If it is true that Aristarchus chose to dwell with Paul in his imprisonment, this speaks for his faithfulness and maturity as Paul's fellow worker for the kingdom of God. 

 

In contrast to the tidbits of information we can glean about Aristarchus is Mark's story. Who is Mark? Mark was the cousin of Barnabas, Paul's famous companion on his first missionary journey. The fact that Mark is singled out along with these other men as Paul's fellow workers for the kingdom of God (Colossians 4:11) is remarkable considering how shaky his first attempt at working with Paul was. On Paul's first missionary journey, Barnabas took along his cousin John Mark, the same Mark of today's text. Early on in their missionary journey, for reasons we can only guess at, Mark decided to leave Paul and Barnabas: 

 

13 Now Paul and his companions set sail from Paphos and came to Perga in Pamphylia. And John left them and returned to Jerusalem, (Acts 13:13) 

 

Because of Mark's desertion, Paul refused to take him along on his second missionary journey, bringing him into conflict with Barnabas, who wanted to give his cousin another chance: 

 

36 And after some days Paul said to Barnabas, “Let us return and visit the brothers in every city where we proclaimed the word of the Lord, and see how they are.” 37 Now Barnabas wanted to take with them John called Mark. 38 But Paul thought best not to take with them one who had withdrawn from them in Pamphylia and had not gone with them to the work. 39 And there arose a sharp disagreement, so that they separated from each other. Barnabas took Mark with him and sailed away to Cyprus, 40 but Paul chose Silas and departed, having been commended by the brothers to the grace of the Lord. 41 And he went through Syria and Cilicia, strengthening the churches. (Acts 15:36-41) 

 

The dispute over Mark was not cordial and calm. It was a sharp disagreement. Barnabas insisted on taking Mark along. Paul dug in his heels and refused. We are not told the reason why Mark walked away from the missionary journey. Maybe he was fearful of the prospect of persecution and risking his life for the gospel. Maybe he disliked the hardships of travel and yearned for the comforts of home. Maybe he had some kind of clash with Paul and out of his wounded pride, decided he had enough. Whatever the reason was, Paul decided that Mark was not ready to join him in his missionary calling. Mark was lacking in certain spiritual qualities to carry him through the difficulties of Paul's apostolic mission. 

 

Many years later, when Paul penned the epistle to the Colossians from Rome, Mark had changed. He was no longer the immature believer who had walked away from Paul and Barnabas at Perga. Over the years since then, Mark had matured in his faith and love towards Christ and now he was Paul's trusted co-worker in ministry. Mark was no longer a liability to Paul. Quite the opposite, Paul regarded Mark as a comfort to him: 

 

10 Aristarchus my fellow prisoner greets you, and Mark the cousin of Barnabas (concerning whom you have received instructions—if he comes to you, welcome him), 11 and Jesus who is called Justus. These are the only men of the circumcision among my fellow workers for the kingdom of God, and they have been a comfort to me. (Colossians 4:10-11) 

 

Fast forward a few more years and Paul's assessment of Mark is even more glowing. Paul is languishing in prison at Rome once again but this time the conditions of the imprisonment are more severe. His previous imprisonment was a house arrest where he was afforded considerable liberties. Now he was locked up as a criminal (2 Timothy 2:9). Forsaken by so many of the churches he labored to establish and build up (2 Timothy 1:15) and anticipating his imminent death (2 Timothy 4:6-7), Paul writes to Timothy concerning John Mark: 

 

“Get Mark and bring him with you, for he is very useful to me for ministry.” (2 Timothy 4:11) 

 

Paul once fought to keep Mark away from his ministry. Now Paul summoned Mark to his side in the most difficult and dangerous of conditions because he had become very useful to him for ministry. This is a testimony to the sanctifying power of God's saving grace. Although Mark demonstrated spiritual immaturity at his first opportunity to work with him, Paul did not write him off for good. He did not put Mark on a blacklist for his initial failure. Paul understood that if the Spirit of Christ lived in Mark, he would mature in Christ-like, sacrificial love for God's church and could possibly one day rejoin him in his challenging ministry. If we are in Christ, we should also refrain from writing off our fellow brethren because of some significant failure or short-coming in their walk with the Lord. And that is because all who turn to Christ for justification receive His Spirit for their sanctification (2 Corinthians 3:18). And that is a life-long process of growth and maturation (Galatians 5:22-23; Colossians 3:10). 

 

When I come home in the evenings, my 4 year old daughter usually runs to the door and greets me with a bright smile. If I forget to, she asks me to give her a hug. When we leave the home in the morning to head off to school, she wants me to hold her hand as soon as we step out of the door. If I delay for a few seconds, she demands to know why I am not holding her hand. As my beloved daughter, she displays towards me, a fundamental attitude of filial affection, dependency, openness, and trust. Sometimes she acts up and I need to take her aside and scold her. Every so often she gets really out of hand which requires more severe chastening. Although my daughter needs to be corrected often and although there are times it is necessary to discipline her, she always treats me as her father, as someone she can trust and depend on. I am always, at least for now, her appa. 

 

When we appropriate for ourselves the benefits of Christ's saving work through faith in Him, our sins are immediately forgiven in full and we are adopted by God as His children. As confirmation of our new status as children of God, the gospel teaches that God sends the Spirit of His Son into our hearts by whom we cry, “Abba! Father!” (Galatians 4:6; Romans 8:14-16) This is referring to the Holy Spirit bearing witness to us that we are really children of God and moving our hearts to cry out to God with an attitude of filial warmth, reliance, and affection. Immature believers, like little children, need frequent reproof. Sometimes, they can stumble quite badly, provoking our frustration and inviting God's chastening. But despite their weaknesses and faults, every believer, no matter how immature they may be, have the Spirit of adoption living within them who moves them to cry out to God as their Abba, Father. Since this is the case, true children of God can be recognized by their attitude of filial affection and dependence towards the God of truth, the God revealed in His word. And true children of God can also be recognized by the fact that they are in a life-long process of growth and change as the Spirit of adoption is also the Spirit of sanctification who is progressively transforming them in Christ-like holiness.

 

So, we should be patient towards our immature brothers in Christ. We should not write them off because of their frequent stumbles or some glaring failure on their part. We should instead cherish how they relate to our heavenly Father with a filial affection which only the Spirit of adoption can produce in a person. We should cherish the fact that although their understanding of the gospel is basic and elementary, they have great confidence to cry out to God as “Abba! Father!” because the precious blood of Christ has brought them into God's family. And as we teach and admonish these little ones in the faith, let us keep in mind that the Spirit of adoption is the Spirit of sanctification who is working in them. Who they are today is not who they will be many years down the road. Wait and see. And we may one day be amazed at the fact that they have grown exponentially in Christ-like love, patience, and in the knowledge of the truth. We may be amazed at the fact that they have become very useful to the Lord for ministry, just like John M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