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
누가복음 1: 31-33
31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32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33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오늘은 성탄 이브 주일이기 때문에 골로새서 강해를 잠시 쉬고 누가복음 1장에 기록된 대로 가브리엘 천사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잉태되심을 알려주는 내용을 함께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의 이전 부분에서 우리는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가 살고 있는 나사렛으로 보내심을 받아 그리스도의 강림에 대한 기쁜 소식을 전하게 되었음을 알게 됩니다.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그에게 들어가 이르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하니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가 생각하매 천사가 이르되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눅1:26-30)
제가 읽어 본 다양한 내용에 따르면 나사렛은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갈릴리 마을이었습니다. 나사렛은 구약성서에 전혀 언급되지 않았으며, 예수님께서 나사렛에서 오셨다는 사실을 알고 나다나엘이 보인 반응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평판이 좋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나다나엘이 이르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이르되 와서 보라 하니라…” (요1:45-46)
분명히 나사렛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백성의 구원자께서 나실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곳은 마리아가 살던 곳이었으며 예수님께서 자라나실 곳이기도 했습니다(눅 4:16). 이 초라한 마을이 하나님의 아들에게 합당한 고향이 된 이유는 그분께서 명예를 위해서가 아닌 비천함을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천사 가브리엘은 이 비천한 나사렛 여인 마리아에게 그녀가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들 예수를 잉태하고 낳을 것이라고 알려 주었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기쁜 소식입니다.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들 예수께서 세상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요한복음의 첫 구절이 분명히 밝히고 있는 놀라운 소식입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1:1)
태초에 그리스도께서는 이미 존재하셨습니다. 그분은 창조 후 존재하신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창조 이전에 존재하셨습니다.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와 함께 계셨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사실 모든 것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졌습니다.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요 1:3) 하나님의 아들은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항상 아버지와 함께 계시므로 아버지와는 인격적으로 구별되는 ‘말씀’이십니다. 그러나 동시에 아들은 아버지와 하나의 본체이십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 1:1) 그분과 아버지는 하나이십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정체성입니다. 하나님의 영원하신 아들, 삼위일체의 두번째 위격이신 성자 하나님이 육체로 오신 것입니다. 곧 완전한 사람이시며 완전한 하나님이십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 1:14) 예수께서는 단지 윤리적인 천재이시거나 혁명가가 아니셨습니다. 그분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분의 획기적인 가르침과 삶의 방식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영원하신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이기 때문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고 불리셨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을 통해 구속받았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으로 입양된 것입니다. 우리는 입양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만이 영원 전부터 아버지와 함께 계셨던 아들이십니다. 아마도 우리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이 암송구절을 통해서 우리는 이러한 말씀을 읽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3:16)
예수님의 아들 되심의 독특함은 “...독생자를 주셨으니…”라는 문구로 표현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사 보내주신 하나님의 독생자이십니다. 아버지께서는 어떤 의미에서 아들을 ‘주셨습니까’? 단지 세상이 따라야 할 도덕적 모범으로 그 분의 아들을 주셨습니까?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하나님께서 그분의 아들을 세상에 윤리적인 모범으로 주셨다는 정도로 축소시키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 아들을 주신다는 복음의 의미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복음의 가르침은 다음과 같습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롬8:32)
하나님은 그 분의 아들, 독생자를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주님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무엇으로부터 아끼지 않으셨다는 것입니까? 형벌로부터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로 인해 우리가 받아야할 형벌을 대신하여 받도록 그의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 할 형벌을 자신의 독생자에게 아끼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마틴 로이드 존스는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여기서 바울 사도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넘겨주셨고 그분에게 어떤 고난도 아끼지 않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그 분의 아들에게 맡겼을 때 그분은 그 아들이 받게 될 형벌을 조금도 보류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죄로 인하여 마땅히 받아야할 모든 형벌을 부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무것도 아끼지 않으셨고, 아들은 기꺼이 그 일에 복종하셨습니다.” (마틴 로이드 존스, 로마서)
아버지께서는 자신의 아들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종종 자신의 자녀를 위험에서 보호해주려고 합니다. 그게 부모의 본능이지요. 우리는 그들이 마땅한 처벌을 받을지라도 처벌로부터 그들을 보호해주고 싶어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들을 처벌할 때, 우리는 주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우리의 죄 때문에 자신의 아들을 처벌하셨고, 주저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우리의 죄로 인해 마땅히 받아야 할 형벌의 가장 큰 타격이 그분의 아들에게 임했습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롬 8:32) 하나님은 그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사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로 아버지의 진노로 충만한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요일4:10)
요한일서 4장 10절은 요한복음 3장 16절과 사실상 같은 내용의 말씀이지만 좀 더 면밀히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요일 4:10) 크리스마스의 기쁜 소식은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들이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로 하나님에 의해 보내심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도록 우리 죄에 합당한 형벌을 모두 받으시기 위함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그분의 사랑을 의심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자기 아들, 곧 자기 독생자, 영원부터 함께 계신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내어주셨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사53:5)
예수님의 십자가는 단지 인간의 계략에 불과했던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위해 당신의 아들을 내어주신 분은 바로 하나님이셨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사 53:10) 그분의 아들이 “우리의 범법으로 말미암아” 찔림을 받는 것이 주님의 뜻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위대한 윤리적 교사로 격하시키는 것은 신성모독입니다. 그런 입장을 취하는 것은 복음을 완전히 거부하는 것이며, 아버지께서 주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임을 철저히 부인하는 것입니다! 크리스마스가 의미가 있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이 구절을 별 생각없이 암송합니다. 우리가 방금 분명히 밝혔듯이, 각 단어에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셨으니...”, “...독생자를...”. 우리가 복음이 선포하고 있는 예수의 이름을 믿는다면, 아버지께서 독생자를 보내사 우리를 위하여 그 아들을 십자가에 넘겨주신 것에 대해 우리 마음은 놀라움과 감사로 가득 차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이 영원한 사형 선고를 받지 않고 영생의 소망을 얻을 수 있도록 독생자를 아끼지 않으셨다는 사실을 알고 우리 마음은 깊은 감동을 받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크리스마스 선물에만 열중합니다. 그들은 크리스마스의 진정한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종종 자신의 선물에 대해 불만을 품고 괴로워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장 큰 선물을 주셨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들이신 예수님이십니다! 우리 마음을 겸손히 하여, 형언할 수 없는 선물을 주신 하나님을 향한 감사가 울려 퍼지게 합시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전한 말을 읽으면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 분의 아들을 주셨을 뿐만 아니라 그 분의 아들에게도 무엇인가를 주셨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눅1:32-33)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이 십자가에서 굴욕을 당하시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분을 굴욕 가운데 내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아들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그를 우편으로 높이셔서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로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끝이 없는 ‘무궁한 나라’는 오직 하나뿐인데, 그것은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마침내 그리스도 예수께서 다시 오실 것이며, 그렇게 하실 때 그분의 통치가 완전히 나타날 것입니다. 그분에 대한 모든 반역은 진압될 것입니다. 그분을 거부한 자들은 심판을 받고 사탄과 그의 천사들과 함께 영원한 멸망에 던져질 것입니다. 그 분의 성도들은 영광을 받고 보상을 받을 것입니다. 피조물은 아담의 죄로 인한 하나님의 저주로부터 해방될 것입니다. 그러면 만물이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와 완전히 화목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그분을 반대하는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모든 원수를 그분의 발 아래 두실 것입니다(고전 15:24-25). 그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우리는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왕에게 반역하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모든 사람이 고난을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환난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다윗의 영원한 보좌에 앉으신 분의 권위와 뜻에 반대되는 세상의 흐름에 맞서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고난은 그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믿지 않는 세상으로부터 받게 되는 조롱과 모욕과 비방은 그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왕이 곧 오시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우리가 기대하는 것 보다 훨씬 더 빨리 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분이 다시 오실 때, 그분을 향한 우리의 확고한 믿음은 우리에게 끝없는 영광을 안겨줄 것입니다.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
누가복음 1: 31-33
31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32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33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오늘은 성탄 이브 주일이기 때문에 골로새서 강해를 잠시 쉬고 누가복음 1장에 기록된 대로 가브리엘 천사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잉태되심을 알려주는 내용을 함께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의 이전 부분에서 우리는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가 살고 있는 나사렛으로 보내심을 받아 그리스도의 강림에 대한 기쁜 소식을 전하게 되었음을 알게 됩니다.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그에게 들어가 이르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하니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가 생각하매 천사가 이르되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눅1:26-30)
제가 읽어 본 다양한 내용에 따르면 나사렛은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갈릴리 마을이었습니다. 나사렛은 구약성서에 전혀 언급되지 않았으며, 예수님께서 나사렛에서 오셨다는 사실을 알고 나다나엘이 보인 반응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평판이 좋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나다나엘이 이르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이르되 와서 보라 하니라…” (요1:45-46)
분명히 나사렛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백성의 구원자께서 나실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곳은 마리아가 살던 곳이었으며 예수님께서 자라나실 곳이기도 했습니다(눅 4:16). 이 초라한 마을이 하나님의 아들에게 합당한 고향이 된 이유는 그분께서 명예를 위해서가 아닌 비천함을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천사 가브리엘은 이 비천한 나사렛 여인 마리아에게 그녀가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들 예수를 잉태하고 낳을 것이라고 알려 주었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기쁜 소식입니다.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들 예수께서 세상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요한복음의 첫 구절이 분명히 밝히고 있는 놀라운 소식입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1:1)
태초에 그리스도께서는 이미 존재하셨습니다. 그분은 창조 후 존재하신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창조 이전에 존재하셨습니다.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와 함께 계셨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사실 모든 것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졌습니다.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요 1:3) 하나님의 아들은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항상 아버지와 함께 계시므로 아버지와는 인격적으로 구별되는 ‘말씀’이십니다. 그러나 동시에 아들은 아버지와 하나의 본체이십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 1:1) 그분과 아버지는 하나이십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정체성입니다. 하나님의 영원하신 아들, 삼위일체의 두번째 위격이신 성자 하나님이 육체로 오신 것입니다. 곧 완전한 사람이시며 완전한 하나님이십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 1:14) 예수께서는 단지 윤리적인 천재이시거나 혁명가가 아니셨습니다. 그분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분의 획기적인 가르침과 삶의 방식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영원하신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이기 때문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고 불리셨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을 통해 구속받았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으로 입양된 것입니다. 우리는 입양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만이 영원 전부터 아버지와 함께 계셨던 아들이십니다. 아마도 우리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이 암송구절을 통해서 우리는 이러한 말씀을 읽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3:16)
예수님의 아들 되심의 독특함은 “...독생자를 주셨으니…”라는 문구로 표현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사 보내주신 하나님의 독생자이십니다. 아버지께서는 어떤 의미에서 아들을 ‘주셨습니까’? 단지 세상이 따라야 할 도덕적 모범으로 그 분의 아들을 주셨습니까?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하나님께서 그분의 아들을 세상에 윤리적인 모범으로 주셨다는 정도로 축소시키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 아들을 주신다는 복음의 의미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복음의 가르침은 다음과 같습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롬8:32)
하나님은 그 분의 아들, 독생자를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주님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무엇으로부터 아끼지 않으셨다는 것입니까? 형벌로부터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로 인해 우리가 받아야할 형벌을 대신하여 받도록 그의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 할 형벌을 자신의 독생자에게 아끼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마틴 로이드 존스는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여기서 바울 사도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넘겨주셨고 그분에게 어떤 고난도 아끼지 않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그 분의 아들에게 맡겼을 때 그분은 그 아들이 받게 될 형벌을 조금도 보류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죄로 인하여 마땅히 받아야할 모든 형벌을 부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무것도 아끼지 않으셨고, 아들은 기꺼이 그 일에 복종하셨습니다.” (마틴 로이드 존스, 로마서)
아버지께서는 자신의 아들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종종 자신의 자녀를 위험에서 보호해주려고 합니다. 그게 부모의 본능이지요. 우리는 그들이 마땅한 처벌을 받을지라도 처벌로부터 그들을 보호해주고 싶어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들을 처벌할 때, 우리는 주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우리의 죄 때문에 자신의 아들을 처벌하셨고, 주저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우리의 죄로 인해 마땅히 받아야 할 형벌의 가장 큰 타격이 그분의 아들에게 임했습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롬 8:32) 하나님은 그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사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로 아버지의 진노로 충만한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요일4:10)
요한일서 4장 10절은 요한복음 3장 16절과 사실상 같은 내용의 말씀이지만 좀 더 면밀히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요일 4:10) 크리스마스의 기쁜 소식은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들이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로 하나님에 의해 보내심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도록 우리 죄에 합당한 형벌을 모두 받으시기 위함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그분의 사랑을 의심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자기 아들, 곧 자기 독생자, 영원부터 함께 계신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내어주셨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사53:5)
예수님의 십자가는 단지 인간의 계략에 불과했던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위해 당신의 아들을 내어주신 분은 바로 하나님이셨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사 53:10) 그분의 아들이 “우리의 범법으로 말미암아” 찔림을 받는 것이 주님의 뜻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위대한 윤리적 교사로 격하시키는 것은 신성모독입니다. 그런 입장을 취하는 것은 복음을 완전히 거부하는 것이며, 아버지께서 주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임을 철저히 부인하는 것입니다! 크리스마스가 의미가 있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이 구절을 별 생각없이 암송합니다. 우리가 방금 분명히 밝혔듯이, 각 단어에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셨으니...”, “...독생자를...”. 우리가 복음이 선포하고 있는 예수의 이름을 믿는다면, 아버지께서 독생자를 보내사 우리를 위하여 그 아들을 십자가에 넘겨주신 것에 대해 우리 마음은 놀라움과 감사로 가득 차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이 영원한 사형 선고를 받지 않고 영생의 소망을 얻을 수 있도록 독생자를 아끼지 않으셨다는 사실을 알고 우리 마음은 깊은 감동을 받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크리스마스 선물에만 열중합니다. 그들은 크리스마스의 진정한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종종 자신의 선물에 대해 불만을 품고 괴로워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장 큰 선물을 주셨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들이신 예수님이십니다! 우리 마음을 겸손히 하여, 형언할 수 없는 선물을 주신 하나님을 향한 감사가 울려 퍼지게 합시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전한 말을 읽으면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 분의 아들을 주셨을 뿐만 아니라 그 분의 아들에게도 무엇인가를 주셨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눅1:32-33)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이 십자가에서 굴욕을 당하시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분을 굴욕 가운데 내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아들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그를 우편으로 높이셔서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로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끝이 없는 ‘무궁한 나라’는 오직 하나뿐인데, 그것은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마침내 그리스도 예수께서 다시 오실 것이며, 그렇게 하실 때 그분의 통치가 완전히 나타날 것입니다. 그분에 대한 모든 반역은 진압될 것입니다. 그분을 거부한 자들은 심판을 받고 사탄과 그의 천사들과 함께 영원한 멸망에 던져질 것입니다. 그 분의 성도들은 영광을 받고 보상을 받을 것입니다. 피조물은 아담의 죄로 인한 하나님의 저주로부터 해방될 것입니다. 그러면 만물이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와 완전히 화목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그분을 반대하는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모든 원수를 그분의 발 아래 두실 것입니다(고전 15:24-25). 그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우리는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왕에게 반역하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모든 사람이 고난을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환난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다윗의 영원한 보좌에 앉으신 분의 권위와 뜻에 반대되는 세상의 흐름에 맞서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고난은 그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믿지 않는 세상으로부터 받게 되는 조롱과 모욕과 비방은 그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왕이 곧 오시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우리가 기대하는 것 보다 훨씬 더 빨리 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분이 다시 오실 때, 그분을 향한 우리의 확고한 믿음은 우리에게 끝없는 영광을 안겨줄 것입니다.
Luke 1:31-33
31 And behold, you will conceive in your womb and bear a son, and you shall call his name Jesus. 32 He will be great and will be called the Son of the Most High. And the Lord God will give to him the throne of his father David, 33 and he will reign over the house of Jacob forever, and of his kingdom there will be no end.”
As today is Christmas Eve Sunday, we will be taking a break from our series in the book of Colossians and consider the annunciation of our Lord Jesus Christ from the angel Gabriel to Mary, the mother of Jesus, as recorded in Luke 1.
A few verses prior to today's text, we learn that Gabriel was sent from God to Nazareth, where Mary was residing, to announce to her the good news of Christ's advent:
26 In the sixth month the angel Gabriel was sent from God to a city of Galilee named Nazareth, 27 to a virgin betrothed to a man whose name was Joseph, of the house of David. And the virgin's name was Mary. 28 And he came to her and said, “Greetings, O favored one, the Lord is with you!” 29 But she was greatly troubled at the saying, and tried to discern what sort of greeting this might be. 30 And the angel said to her, “Do not be afraid, Mary, for you have found favor with God. (Luke 1:26-30)
Based on my various readings, Nazareth was an obscure Galilean village off the beaten path. Nazareth is never mentioned in the Old Testament and if Nathanael's reaction to learning that Jesus had come from Nazareth is any indication, it did not have much of a reputation:
45 Philip found Nathanael and said to him, “We have found him of whom Moses in the Law and also the prophets wrote, Jesus of Nazareth, the son of Joseph.” 46 Nathanael said to him, “Can anything good come out of Nazareth?” (John 1:45-46)
Apparently, Nazareth was not a place people would expect to be the hometown of the Savior of God's people. But it was where Mary resided and it would be the place where Jesus would be raised (Luke 4:16). This humble village would be an appropriate hometown for the Son of God because He came into this world not for prestige but for humiliation.
To Mary, this woman from lowly Nazareth, the angel Gabriel announced that she would conceive and bear, Jesus, the Son of the Most High. This is the good news of the gospel: Jesus, the Son of the Most High, came into the world. This is astonishing news, which the first verse of the gospel of John makes clear:
“In the beginning was the Word, and the Word was with God, and the Word was God.” (John 1:1)
In the beginning of creation, Christ already was. He did not come into existence along with creation. He preexisted creation. From all eternity, Christ was with His Father. “In the beginning was the Word, and the Word was with God...” In fact, it was through Christ that everything was made. “All things were made through him, and without him was not any thing made that was made.” (John 1:3) The Son of God was not made. He was the One through whom all things were made. So again, Jesus is the Word who was always with the Father and therefore distinct in person from the Father. And yet at the same time the Son is one substance with the Father. “In the beginning was the Word, and the Word was with God, and the Word was God.” (John 1:1) He and the Father are One. This is the identity of Jesus: the eternal Son of God, the second person of the Triune Godhead, come in the flesh, fully man and fully God. “And the Word became flesh and dwelt among us, and we have seen his glory, glory as of the only Son from the Father, full of grace and truth.” (John 1:14) Jesus was not merely an ethical genius and revolutionary. He was called the Son of God not as a way to commemorate His groundbreaking teaching and way of life. Jesus was called the Son of the Most High because He was the eternal Word become flesh. If we have been redeemed through the saving work of Christ, we have been adopted into God's family. We are sons of God by adoption. But Jesus alone is the Son who, from all eternity, was with the Father. So, we read in perhaps the most widely memorized verse of scripture:
16 “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ly Son, that whoever believes in him should not perish but have eternal life. (John 3:16)
The uniqueness of Jesus' Sonship is expressed in that phrase, “...he gave his only Son”. Jesus is God's only Son, whom He gave out of His love for the world. In what sense did the Father give His Son? Did He give His Son merely as a moral example for the world to follow? So many want to reduce the gospel to just that – God giving His Son as an ethical example to the world. But that is not what the gospel means when it refers to the Father giving His Son. Here then is the gospel teaching:
“He who did not spare his own Son but gave him up for us all, how will he not also with him graciously give us all things?” (Romans 8:32)
God did not spare His own Son, His only Son. He did not spare Him. Spare Him from what? Spare Him from punishment. God gave His only Son to be punished in our place for our sins. He did not spare His only Son the punishment we so richly deserved. As Martyn Lloyd Jones writes:
“The Apostle is asserting that God delivered Him up, and did not spare Him any suffering. When God put our sins upon His own Son He did not withhold any part of the punishment from Him; He poured it all upon Him, everything that it deserved. God kept nothing of it back, and the Son submitted Himself to it willingly.” (Martyn Lloyd Jones, Romans)
The Father did not spare His own Son. We often spare our own children. That is parental instinct. We want to shield them from punishment even though they deserve it. And when we do punish them, we tend to hold back. But the Father punished His own Son for our sins and when He did, He did not hold back. On His Son fell the full brunt of the punishment our sins deserve. “He who did not spare his own Son but gave him up for us all...” (Romans 8:32) God did not spare His Son but instead, gave Him up to the cross for us where He suffered the full measure of the Father's wrath as a propitiation for our sins:
10 In this is love, not that we have loved God but that he loved us and sent his Son to be the propitiation for our sins. (1 John 4:10)
1 John 4:10 tells us virtually the same thing as John 3:16 but in more technical terms: “...he loved us and sent his Son to be the propitiation for our sins.” (1 John 4:10) The good news of Christmas is that the Son of the Most High was sent by God “to be the propitiation for our sins” - to suffer the full punishment our sins deserve so that we may be spared. This is the love of God. How could we ever cast doubt on His love? He did not spare His own Son, His only Son, His Son who was with Him from all eternity, but gave Him up for us.
“But he was pierced for our transgressions; he was crushed for our iniquities; upon him was the chastisement that brought us peace,” (Isaiah 53:5)
The cross of Jesus was not merely a human machination. It was God who sent His Son to be crushed for us. “Yet it was the will of the Lord to crush him;” (Isaiah 53:10) It was the will of the Lord that His Son would be “pierced for our transgressions”. It is blasphemy to reduce Jesus to nothing more than a great ethical teacher. To take that position is a complete rejection of the gospel and an utter denial that Jesus is the Son of the Most High given by the Father! The reason Christmas has any real meaning is because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ly Son...” People recite this verse so thoughtlessly. Each one of those words has depth of meaning, as we just clarified. “...he gave...”, “...his only Son...”. If we believe in the name of Jesus, the Jesus of the annunciation, the Jesus proclaimed in our gospel, our hearts should be moved with astonishment and thanksgiving that the Father would send His only Son and give Him up for us to the cross. Our hearts should be profoundly moved knowing that God did not spare His only Son so that we might be spared an eternal death sentence and obtain the hope of everlasting life. Let the world obsess about their Christmas presents! They are often peeved and bitter over their gifts because they fail to comprehend the true reason for this season! God has given us the greatest gift of all: Jesus, Son of the Most High! Let our hearts be humbled, let our hearts resound with thanks to God for His inexpressible gift!
So, God gave His only Son for us. And as we read on in the annunciation, we are reminded that God not only gave His Son but also gave something to His Son:
“And the Lord God will give to him the throne of his father David, and he will reign over the house of Jacob forever, and of his kingdom there will be no end.” (Luke 1:32-33)
God sent His Son to the humiliation of the cross. But God did not leave Him to His humiliation. God raised His Son from the dead and has exalted Him to His right hand where He reigns as the King of kings and Lord of lords. There is only one kingdom that has no end and that is the kingdom of Christ and God. When all is said and done, Christ Jesus will return again and when He does, His rule will be fully manifest. All rebellion against Him will be crushed. Those who have rejected Him will be judged and cast bodily into everlasting perdition with Satan and his angels. His saints will be glorified and rewarded. Creation will be liberated from God's curse for Adam's sin. And all things will be perfectly reconciled to God our Father and the Lord Jesus Christ. When all is said and done, our Lord will destroy every authority and power that opposes Him and will put all His enemies under His feet (1 Corinthians 15:24-25). That day is coming. But for now, we live in a world that revolts against God's anointed King. That means suffering for all who trust in Christ Jesus. That means tribulation. That means standing against the course of a world as it opposes the authority and will of Him who sits on David's eternal throne. But the suffering is worth it. The mockery and insults and slander at the hands of an unbelieving world is worth it. Because our King is coming soon. Much sooner possibly, then we expect. And when He returns, our steadfast faith in Him will result in unending glory for 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