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골로새서 1:12-14
12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13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14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골로새서 강해를 계속해서 진행하고 있는 가운데 오늘은 1장 12절에서 14절까지의 말씀을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들께서 기억하시는 것처럼 사도 바울은 1장 9절에서부터 골로새 성도들을 위한 위대한 기도를 기록했습니다.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골1:9)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에게 복음이 열매 맺고 있다는 말을 들은 날부터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식이 충만하기를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다면 우리는 철저하게 그 두려움의 영향 아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포도주로 가득 차 있을 때 우리는 강력하게 그 영향력 아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대한 지식으로 충만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계시된 뜻의 강력하고 철저한 영향력 아래 있게 됩니다. 이것이 바울이 골로새 교인들을 대신하여 기도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왜 이렇게 기도했을까요? 골로새 교인들이 하나님의 뜻의 강력한 영향력을 받은 결과 “주께 합당히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골로새서 1:10) 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그의 영광의 힘을 따라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 (골1:9-11)
우리가 지금까지 배웠듯이, 본문에 따르면 주님께 합당하게 행하는 것은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나는 것, 또 그의 영광의 힘을 따라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되어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는 것” (골 1:10-11)입니다. 믿는 자들이 주께 합당하게 행하지 않는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식은 있으나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식으로 “충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식으로 “충만”하지 않으면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거나 그분에게 합당하게 행할 수 있도록 충분히 감동시키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골로새 성도들이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식으로 감동을 받아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으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가는 삶을 살게 해달라고 골로새 교인들을 대신하여 간구한 것입니다. 믿는 자들이 이런 삶을 사는 것이 주님께 합당하게 사는 삶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바울이 골로새 교인들을 위해 기도한 이 위대한 간구에 대해 배워왔습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주님께 합당하게 행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한 가지 더 보여줍니다.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골1:12)
주께 합당하게 사는 것은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으며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자라가며 하나님의 능력으로 강하여져서 모든 인내와 기쁨으로 참음이 되고 마지막으로 아버지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신자로서 우리의 마음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대한 감사로 끊임없이 넘쳐 흐르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일을 생각할 때 마음속 깊은 곳에서 감격하여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까? 아니면 우리의 감사는 일반적으로 그저 격식을 차리며 긴급한 요청이 많을 때 기계적으로 하는 것은 아닙니까? 신자로서 우리는 불평과 간구가 많은 반면 아버지에 대한 진실하고 마음에서 우러나온 감사가 혹시 적지는 않습니까? 하나님께 대한 감사가 없는 성도는 누가복음 17장에 기록된 예수님께 고침을 받은 아홉 나병환자의 예와 같습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한 마을에 들어가시니 나병환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소리를 높여 이르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보시고 이르시되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그 중의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눅17:11-19)
감사를 드리기 위해 가던 길을 돌아선 한 명의 나병환자보다 깨끗해진 후에도 감사드리지 않고 제갈길을 간 나병환자 아홉 명과 같은 그리스도인들이 더 많지 않습니까? 12-13절이 열 나병환자들에 대해 어떻게 말씀하는가를 주목하십시오. “...한 마을에 들어가시니 나병환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소리를 높여 이르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저 또한 이 성소에서 주중 아침 기도를 드릴 때에 제 마음을 괴롭히는 일들에 대하여 주님께서 불쌍히 여기시고 자비를 베푸시기를 큰 소리로 외치며 간구했습니다. 그리고 몇 번이고 주님은 저에게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그러나 15-16절 말씀을 주목하십시오. “...그 중의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 고침을 받은 열 명의 나병환자 중에 사마리아 사람 한 사람만 돌아와서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감사를 드렸습니다. 저 또한 몇 번이나 큰 소리로 간구하며 소리를 높여 하나님께 간구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간절히 간구하던 그 때만큼 큰 소리로 간절히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 적이 언제였는지요.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왜 그런 것일까요? 저는 제 삶 가운데 산재한 문제들과 죄에 너무 압도되어 오직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주님께 간구하는 것 밖에 없었음을 기억합니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자비에 압도되어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감사한 것은 언제였는지요.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만일 여러분께서도 저와 같다면 J.C. 라일의 말은 우리에게 주어지는 시기적절한 책망입니다.
우리들은 아홉 나병환자들과 너무도 닮았습니다. 우리는 찬양하기보다 기도하기를 더 좋아하고, 우리가 가진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하기보다는 우리가 가지지 못한 것을 하나님께 간구하기를 더 좋아합니다. 투덜거림과 불평과 불만이 사방에 가득합니다. 자신들의 간구와 어려움을 감사드리는 것보다 위에 두지 않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이래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교회와 세상을 아는 모든 사람들은 이것이 사실이라고 고백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만연해 있는 “감사하지 않음”은 우리 시대의 수치입니다. (J.C. 라일, 누가복음)
오늘 본문과 누가복음 17장의 이 구절을 묵상하면서 그 유명한 찬송가인 “세상 모든 풍파 너를 흔들어” 의 가사가 생각났습니다.
세상 모든 풍파 너를 흔들어
약한 마음 낙심하게 될 때에
내려주신 주의 복을 세어라
주의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받은 복을 세어보아라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받은 복을 세어보아라
주의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존슨 오트만, 받은 복을 세어보아라)
여러분께서 받으신 많은 축복을 세어보시고,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무슨 일을 행해주셨습니까? 우리가 날마다 누리는 생명과 양식과 건강과 안전과 우리가 감사해야 할 무수한 물질의 긍휼 외에, 골로새인들처럼 복음이 우리 삶에 열매를 맺어 변화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있다면, 12절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궁극적인 일이 무엇인지를 상기시켜 줍니다. 우리가 이 궁극적인 축복을 날마다 세지 않기 때문에 우리의 감사가 너무 형식적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골1:12)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을 주셨습니다. 우리들은 성도의 기업을 받을 자격이 전혀 없었습니다. 복음은 자격이 없는 자들에게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을 갖추게 하시는 “하나님의 기쁜 소식”입니다. 성도의 기업을 나누어 가질 자격을 얻기 위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해주신 일을 더 깊이 이해할수록 그분을 향한 우리의 감사는 더욱 깊어질 것입니다. 우리는 에베소서 4장 17-19절과 같은 구절에서 우리가 얼마나 자격이 없는 자들이었으며, 하나님께서 우리가 성도의 기업을 받을 자격을 가질 수 있도록 얼마나 많은 일을 행하셨는지에 대한 분명한 의미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언하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행하지 말라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그들이 감각 없는 자가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엡4:17-19)
첫째, 구원을 떠나서 우리의 삶은 우리 마음의 허망한 것들을 따라 살았습니다. 불신자들은 쾌락과 돈,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과 승인을 얻는 삶, 출세와 야망을 얻는 것, 유명해지는 삶, 또 결혼하고 자녀를 낳으면 가족의 이름을 알리는 데 자신들을 헌신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비유에 나오는 것처럼, 어리석은 부자가 자기 영혼의 영원한 유익은 무시하면서 장래를 계획했던 것처럼, 믿지 않는 자의 생각들은 결국 헛된 것입니다. 죽음의 문턱과 영원의 문턱에 서 있는 가장 절실한 순간에는 그들이 마음먹은 것 중 어느 것도 그들에게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인간이 거둘 수 있는 가장 큰 성공을 거두고 온 세상을 얻는다 해도 그의 삶은 헛수고가 될 것입니다. 존 맥아더 목사님의 말처럼 “그런 사람은 일시적으로 모든 것을 소유했지만 천국이 아닌 지옥에서 영원을 맞이하는, 걸어다니는 송장이 될 것입니다.” (존 맥아더, 맥아더 신약주석) 그것이 한때 우리가 구원에서 떠나 있었을 때 우리의 모습이었습니다. 걸어다니는 송장, 곧 우리 마음의 허망함을 따라 걷는 사람들말입니다.
둘째, 구원받지 못했을 때 우리의 총명과 이해력이 어두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구원의 이해가 부족했습니다. 우리는 복음에 대해 무지했습니다. 이 무지의 뿌리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에베소서 4장 18절은 이것이 우리 마음의 완악함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 가운데 복음이 열매를 맺는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식이 충만하기를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이렇게 기도한 이유는 구원 안에서 하나님께서 골로새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의 계시에 영적으로 반응하는 새 마음을 주셨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방식으로 행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불신자들은 마음이 완악하여 그런 능력이 없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닫혀 있고 차갑고 진리의 하나님을 향해 반응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복음 안에서 그분을 알고자 하는 욕망이 없기 때문에 그들을 구원할 수 있는 이 유일한 진리를 어리석다고 하며 무시합니다(고전 2:14; 고후 4:3-4). 평생 성경을 공부했지만 복음의 핵심 메시지를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학자와 목사,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그러한 상태의 원인은 한 가지입니다. 그들의 마음이 완악하기 때문입니다. 불신자들은 마음이 완악하여 복음에 대한 영적인 이해가 부족하여 하나님의 생명에서 멀어져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누리는 것과, 그의 뜻을 아는 것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오는 확신과 변화, 또 그리스도와 그 분의 백성과의 교제와 영생의 소망에서 소외되어 있습니다(엡 2:12). 오늘날 우리가 신자라면 이것이 한때 우리의 비참한 모습이었습니다. 절망적인 삶을 살아가며 우리 마음의 완고함의 노예로 살아가던 자들이었습니다.
셋째, 구원을 떠나서 우리의 마음은 굳어졌습니다. 제가 어쿠스틱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을 때 연습할 때마다 두꺼운 금속 줄이 손가락을 파고드는 것이 고통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연습을 거듭할수록 손끝에 굳은살이 생기면서 연습의 고통도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믿지 않았을 때 우리의 마음은 굳어져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죄를 지을수록 양심의 가책도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우리는 마음의 도덕적 고통도 잃어버렸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행한 일, 우리 자신에게 행한 일, 우리 마음을 더럽힌 일, 우리 마음 가운데 악을 허용한 일, 잘못인 줄 알면서 행한 모든 일 – 우리가 이러한 일들을 더 많이 행할수록 양심의 고통도 줄어들었습니다. 우리가 젊었을 때 밤잠을 설치며 행했던 일들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양심의 가책도 일으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이 굳어짐에 따라 관능에 자신을 내어주었습니다. 우리는 양심의 미약한 저항을 무시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우리는 부끄러움을 잃었습니다. 무정한 상태에서 우리는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하고,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말하고, 생각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생각하면서 점점 더 방종했습니다. 우리의 도덕적 무감각함과 관능에 대한 방종은 “온갖 더러운 일을 탐내는" 태도로 이어졌습니다(엡 4:19). 속이고, 미혹하고, 도둑질하고, 중상모략하고, 욕하고, 무자비하고, 이기적이고, 자기 미화하고, 온갖 종류의 우상숭배를 행했습니다. 어느 시점에서 이러한 것들이 이제 충분하다고, 이만하면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그러한 행동을 유지하고 싶었습니다. 추잡함, 음탕함, 음란한 상상, 외설물, 음행, 간음, 모든 모양의 성적 타락에도 불구하고 음란함에 대한 우리의 욕구는 채울 수 없었습니다. 우리 중 일부는 이러한 일을 뻔뻔스럽게 실행했습니다. 우리 중 다른 사람들은 표면적인 예의와 도덕이라는 가면 뒤에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그런 일들을 실행했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이러한 일로 인해 실족한 것이 아니라 이런 것들을 행하려고 욕심을 냈습니다. 우리만 그저 죄만 지은 것이 아닙니다. 그것만으로도 의로우시고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정죄하기에 충분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한때 우리가 행한 허물과 죄로 인해 죽어 있었습니다. 우리는 총명이 어두워지고 마음이 굳어졌으며 우리의 죄에 대하여 무감각해졌으며 육욕에 빠지게 되었으며 온갖 더러운 일을 행하고자 하는, 만족할 줄 모르는 정욕을 갖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사탄의 추종자, 그의 권세 아래 있는 노예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거나 감사하기를 거부하는 하나님의 원수였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상상으로 만든 신, 우리의 형상대로 창조한 신, 우리가 대중이 원하는 정서에 따라 빚어낸 신을 존경하고 감사하였으나 유일하시며 참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고 감사하지 아니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롬1:21-23)
하나님의 자녀들이여, 기억하십시오. 이것이 한때 우리의 모습이었습니다! 우리는 빛 가운데서 성도들의 기업의 부분을 받을 자격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그 분의 아들을 우리의 구주로 보내셨습니다. 친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원수를 위해서 그 분의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롬5:6-8)
아버지는 그저 때때로 부적합한 행위를 행한 사람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죄에 자신을 완전히 내맡긴 완고한 반역자들을 위해 그 분의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그 분은 우리를 구속하기 위해 그 분의 아들을 보내셨고, 십자가에서 그 분의 몸으로 우리 죄의 값을 지불하셨습니다. 이렇게 하신 것은 우리의 죄를 정당하게 용서하실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본문 14절이 선언하듯이, 그 분 안에서 “우리는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고, 우리가 어떠한 자들이었는지를 기억하고, 아버지께서 그 분의 아들을 통해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을 기억하며, 목소리를 높여 아이작 와츠의 찬송시를 따라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놀라운 사랑 받은 나 몸으로 제물 삼겠네…” (주 달려 죽은 십자가, 아이작 와츠)
이것은 놀라운 일이지만 그것이 아버지께서 하신 일의 전부는 아닙니다.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말씀하는 것을 들어보십시오.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골1:13)
아버지는 우리의 구속자로서 우리의 죄값을 치르기 위해 아들을 보내셨을 뿐만 아니라 흑암의 권세 아래 하나님 없이 비참했던 삶에서부터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우리 마음의 허망함과 굳어진 마음 가운데 내버려 두시려고 우리를 용서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분이 우리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내버려 두신다고 말하는 것은 아버지의 사랑에 대한 모독입니다.하나님께서는 흑암의 권세에서 우리를 건져내셨습니다. 우리의 허망한 마음, 총명이 어두워진 마음, 완악한 마음, 그리고 우리 안에 있는 무지를 제하여 버리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복음을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우리 마음을 밝혀 주셨고, 그 분을 향하고 그 분을 기쁘시게 하고자 하는 새로운 마음을 주셔서 주님을 기꺼이 신뢰하고 믿음으로 견디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보내시어 날마다 우리를 새롭게 하심으로 우리의 굳은 마음을 제거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삶 전체에 걸쳐 내적으로 변화됨으로 죄에서뿐만 아니라 아니라 죄의 권세와 오염으로부터 깨끗해집니다. 그리고 바로 그 하나님의 영은 또한 우리가 참으로 회심하여 이제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되었다는 우리의 보증이 됩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우리에게 약속된 영광과 구원의 충만함인 “성도의 기업”을 빛 가운데 얻기에 합당하게 해주시는 보증이십니다. 이렇게 우리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하시는 아들의 나라로” 우리를 옮기셨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예전처럼 마귀의 노예가 아닙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구속을 받고 그 분의 성령의 인도를 받아 그의 통치권으로 옮겨졌고 그 분의 영원한 나라의 시민으로서 그 분의 통치와 보호를 받으며 이 어둡고 악한 세상에서 그 분의 재림과 온 땅에 그 분의 통치가 드러나기까지 인내하며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신자라면 이 모든 것이 우리에게 참된 것이므로 우리 자신을 잘 살펴봅시다. 에베소서 4장 17-19절에 기록된 삶의 방식이 한때는 우리의 모습이었으나 더 이상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께 감사드리십시오!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생명이 당신 안에 있습니다. 우리가 곤경에 처했을 때 우리는 얼마나 쉽게 하나님께 목소리를 높이는지 모릅니다. 아홉 명의 나병환자가 그렇게 했습니다. 성도들이 큰 소리로 하나님께 찬양과 감사를 드리는 것은 얼마나 드문 일입니까? 불평과 탄식과 괴로움을 토로하는 그리스도인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은 얼마나 흔한 일입니까? 그러나 우리의 감사는 어디에 있습니까? “...받은 복을 세어 보아라 주의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아버지께서 여러분을 위해 행하신 일을 기억하십시오. 얼마나 놀라운 자비이며 놀라운 은혜입니까! 매일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우리 주님께 합당하게 행하며 살아가는 것의 주요 부분입니다.
Giving Thanks to the Father
Colossians 1:12-14
12 giving thanks to the Father, who has qualified you to share in the inheritance of the saints in light. 13 He has delivered us from the domain of darkness and transferred us to the kingdom of his beloved Son, 14 in whom we have redemption, the forgiveness of sins.
I would like to remind everyone that we are continuing with our series in Colossians picking up where we left off last week in the first chapter of this epistle, moving on to verse 12 – 14.
If you recall, since verse 9 of this chapter, the apostle Paul has been expressing his great prayer for the Colossian believers:
9 And so, from the day we heard, we have not ceased to pray for you, asking that you may be filled with the knowledge of his will in all spiritual wisdom and understanding, (Colossians 1:9)
From the day that he heard about the gospel bearing fruit among the Colossians, Paul began to pray that they would be filled with the knowledge of God's will. When we are filled with fear, we are thoroughly under it's influence. When we are filled with wine, we are powerfully under its influence. When we are filled with the knowledge of God's will, we are mightily and thoroughly under the influence of the revealed will of God. This is what Paul was praying for on behalf of the Colossians. Why did he pray this? So that as a result of coming under the mighty influence of God's will, they would begin “to walk in a manner worthy of the Lord, fully pleasing to him:” (Colossians 1:10).
9 And so, from the day we heard, we have not ceased to pray for you, asking that you may be filled with the knowledge of his will in all spiritual wisdom and understanding, 10 so as to walk in a manner worthy of the Lord, fully pleasing to him: bearing fruit in every good work and increasing in the knowledge of God; 11 being strengthened with all power, according to his glorious might, for all endurance and patience with joy; (Colossians 1:9-11)
As we have learned so far, according to our text, to walk in a manner worthy of the Lord consists of “bearing fruit in every good work and increasing in the knowledge of God; being strengthened with all power, according to his glorious might, for all endurance and patience with joy;” (Colossians 1:10-11) Not all believers walk in a manner worthy of the Lord because although they possess knowledge of God's will, they are not filled with the knowledge of God's will. The knowledge of God's will revealed in His word does not influence them and move them sufficiently so as to walk in a manner worthy of the Him. And that is why Paul prayed this great request on behalf of the Colossians so that as a result of being mightily moved by the knowledge of God's will, the Colossian believers would live lives bearing fruit in every good work and increasing in the knowledge of God, being strengthened with all the power they needed to persevere in faith amid all the trials they would face and doing so patiently with joy. For believers to live this kind of life is a life lived in a manner worthy of the Lord. This is what we have learned so far in regard to this great prayer that Paul prayed on behalf of the Colossians. Today's text gives us one more aspect of what it means for us to walk in a manner worthy of the Lord:
“...giving thanks to the Father, who has qualified you to share in the inheritance of the saints in light.” (Colossians 1:12)
To live in a manner worthy of the Lord involves bearing fruit in every good work, increasing in the knowledge of God, being strengthened by God's power for all endurance and patience with joy, and finally giving thanks to the Father. As believers, do our hearts overflow constantly with thanksgiving towards our heavenly Father? When we consider what God has done for us, do we feel moved from the depths of our hearts with gratitude and pour out thanksgiving to Him? Or is our thanks generally more of a formality, something we utter mechanically in our prayers before rushing on to our many urgent requests? As believers, do we find that genuine, heart-felt thanks towards our Father is scarce while complaints and supplications abound? Believers who lack in thanksgiving towards God are akin to the nine lepers Jesus healed in that incident recorded in Luke 17:
11 On the way to Jerusalem he was passing along between Samaria and Galilee. 12 And as he entered a village, he was met by ten lepers, who stood at a distance 13 and lifted up their voices, saying, “Jesus, Master, have mercy on us.” 14 When he saw them he said to them, “Go and show yourselves to the priests.” And as they went they were cleansed. 15 Then one of them, when he saw that he was healed, turned back, praising God with a loud voice; 16 and he fell on his face at Jesus' feet, giving him thanks. Now he was a Samaritan. 17 Then Jesus answered, “Were not ten cleansed? Where are the nine? 18 Was no one found to return and give praise to God except this foreigner?” 19 And he said to him, “Rise and go your way; your faith has made you well.” (Luke 17:11-19)
Are not many Christians more like the nine lepers who continued on their way after they were cleansed than the one leper who turned back to give thanks. Notice what verse 12 - 13 tells us about the ten lepers. “And as he entered a village, he was met by ten lepers, who stood at a distance and lifted up their voices, saying, 'Jesus, Master, have mercy on us.'” I must admit that so very many times in this sanctuary, during my morning prayers throughout the week, I have cried out with a loud voice for the Lord to have mercy on me in regards to the things that were troubling my heart. And time and time again, the Lord has shown me mercy. But notice what we read in verse 15 - 16. “Then one of them, when he saw that he was healed, turned back, praising God with a loud voice; and he fell on his face at Jesus' feet, giving him thanks. Now he was a Samaritan.” Of the ten lepers who were healed, only one, the Samaritan, turned back and with a loud voice praised God and fell on his face in thanksgiving. I couldn't tell you how many times I lifted up my voice with loud cries of supplication, I've done it so often. But when was the last time I gave thanks to God as loudly and with as much fervor as those times of desperate supplication? I can't remember. Why is that? I can remember many times in my life that I felt so overwhelmed by my troubles and my sins that all I could do was fall flat on my face in supplication. But when was the last time I felt so overwhelmed by God's mercy that I fell flat on my face in thanksgiving? I can't remember. If you are anything like me, the words of J.C. Ryle is timely reproof:
“The best of us are far too like the nine lepers. We are more ready to pray than to praise, and more disposed to ask God for what we have not, than to thank Him for what we have. Murmurings, and complainings, and discontent abound on every side of us. Few indeed are to be found who are not continually hiding their mercies under a bushel, and setting their needs and trials on a hill. These things ought not so to be. But all who know the church and the world must confess that they are true. The wide-spread thanklessness of Christians is the disgrace of our day.” (J.C. Ryle, The Gospel of Luke)
As I was reflecting on today's text and this passage in Luke 17, I was reminded of the words of that famous hymn, Count Your Blessings:
When upon life's billows you are tempest tossed,
When you are discouraged, thinking all is lost,
Count your many blessings, name them one by one,
And it will surprise you what the Lord hath done.
Count your blessings, name them one by one;
Count your blessings, see what God hath done;
Count your blessings, name them one by one;
Count your many blessings, see what God hath done.
(Johnson Oatman, Count Your Blessings)
Count your many blessings, see what God hath done. What has God done? Aside from the daily mercies of our provision of life, food, health, safety, and countless material blessings for which we ought to give thanks, if the gospel has borne fruit in our lives as it did among the Colossians, and we possess faith in Christ that comes from a transformed heart, verse 12 reminds us of the ultimate thing that God has done for us. It is because we do not count this ultimate blessing daily, our thanksgiving becomes so perfunctory:
“...giving thanks to the Father, who has qualified you to share in the inheritance of the saints in light.” (Colossians 1:12)
God has qualified us to share in the inheritance of the saints in light. We were utterly unqualified to share in the inheritance of the saints. The gospel is the good news of God qualifying the unqualified to share in the inheritance of the saints in light. The more deeply we understand what God has done in order to qualify us to share in the inheritance of the saints, the more profound our thanks towards Him will be. We can get a clear sense of just how unqualified we were and how much God did to qualify us in a passage like Ephesians 4:17-19:
17 Now this I say and testify in the Lord, that you must no longer walk as the Gentiles do, in the futility of their minds. 18 They are darkened in their understanding, alienated from the life of God because of the ignorance that is in them, due to their hardness of heart. 19 They have become callous and have given themselves up to sensuality, greedy to practice every kind of impurity. (Ephesians 4:17-19)
First of all, apart from salvation, our lives were lived in the futility of our minds. The unbelieving devote their thoughts to their pleasure, to money, to finding acceptance and approval from others, to moving up in life and their own ambitions, to making a name for themselves and when they get married and have children, to making a name for their own family. But like the rich fool in Jesus' parable who made plans to enjoy many years to come but ignored the good of his own soul until it was too late, the thoughts of the unbelieving are ultimately futile. None of the things they set their minds on will be of any good to them in their moment of greatest need as they stand on the threshold of death and on the brink of eternity. Even if an unbeliever managed to pull off the greatest success known to man and acquired for himself the whole world, his whole life would be an exercise in futility. As John MacArthur puts it, “Such a person would be a walking dead man who temporarily owned everything but who faced an eternity in hell rather than in heaven.” (John MacArthur, MacArthur New Testament Commentary) That is what we once were apart from salvation – walking dead men and women – people walking in the futility of our minds.
Secondly, apart from salvation, we were darkened in our understanding. We lacked a saving understanding of God's word. We were in the dark regarding the gospel. What was at the root of this ignorance? We are told in verse 18 of Ephesians 4 that this was due to the hardness of our heart. It was only when the apostle Paul heard about the gospel bearing fruit among the Colossians, he began to pray that they would be filled with the knowledge of God's will. That is because he knew that in salvation, God had granted the Colossian believers a new heart that was spiritually responsive to the revelation of God's word and had the capacity to be moved into walking in a manner that is pleasing to God. But unbelievers have no such capacity due to the hardness of their hearts. Their hearts are closed, cold, and unresponsive towards the God of truth. They have no desire to know Him as He offers Himself in His gospel so they dismiss the only truth that can save them as folly (1 Corinthians 2:14; 2 Corinthians 4:3-4). How do we explain scholars and ministers and church goers who have studied the bible all their lives and yet for all their study, fail to understand and accept the central message of the gospel? There is only one explanation: the hardness of their hearts. Due to their hardness of heart, unbelievers lack a spiritual understanding of the gospel and thereby are alienated from the life of God. They are alienated from the enjoyment of God's saving grace, from the knowledge of His will, the assurance and the transformation that comes by His Spirit, from fellowship with Christ and His people, and from the hope of eternal life (Ephesians 2:12). If we are believers today, this was once our abject condition. We lead a hopeless existence, slaves to the hardness of our own hearts.
Thirdly, apart from salvation, we are told that we became callous. When I started to learn the acoustic guitar, each time I practiced was a painful experience as the thick, metal strings dug into my fingers. But over time, as I practiced more and more, callouses developed on my finger tips and the pain of practicing became less and less. When we were unbelieving, we had become callous. Over time, the more and more we sinned, the less and less our consciences were troubled. Over time, we lost our sense of moral pain. The things we did to others, the things we did to ourselves, the things we defiled our minds with, the things we allowed to poison our hearts, all these things that we did that we knew were wrong – the more we did them, the less it bothered us. Things that we did that used to keep us awake at night when we were younger, barely registered in our conscience as we grew older. And as we became callous, we gave ourselves up to sensuality. We learned to ignore the feeble protests of our conscience. We lost our sense of shame. In our callousness, we did whatever we wanted to do, said whatever we wanted to say, thought whatever we wanted to think, with greater and greater abandon. Our moral callousness and abandonment to sensuality, led to an attitude that was “greedy to practice every kind of impurity” (Ephesians 4:19). Cheating, deceiving, stealing, slandering, railing, ruthlessness, self-seeking, self-glorifying, idolatry of every stripe – one would think at some point we would have enough of these things but no, we wanted to keep at it. Indecency, lewdness, unclean ruminations, pornography, fornication, adultery, sexual degradation of every stripe – our appetite for impurity was insatiable. Some of us practiced these things brazenly. Others of us practiced them out of sight, behind a mask of superficial decency and morality.
We did not stumble into these things on occasion. We were greedy to practice these things. We were not only guilty of sin. That in and of itself would have been sufficient to condemn us before a just a holy God. We were dead in the trespasses and sins in which we once walked. We were darkened in our understanding, hardened in our hearts, we became callous towards our sins and gave ourselves up to sensuality, we had an insatiable appetite to practice every kind of impurity. We were no less than followers of the devil, thralls in his domain. We were enemies of God who refused to honor Him or give thanks to Him. We honored and gave thanks to the god we conjured up in our own imagination, the god we created in our own image, the god we molded according to popular sentiment, but not the one true God, the holy God, the God and Father of our Lord Jesus Christ.
“For although they knew God, they did not honor him as God or give thanks to him, but they became futile in their thinking, and their foolish hearts were darkened. Claiming to be wise, they became fools, and exchanged the glory of the immortal God for images resembling mortal man and birds and animals and creeping things.” (Romans 1:21)
Remember, children of God, this is who we once were! We were radically unqualified to share in the inheritance of the saints in light. And yet, for us, God sent His Son as our Redeemer. He sent His Son not for His friends but for His enemies:
6 For while we were still weak, at the right time Christ died for the ungodly. 7 For one will scarcely die for a righteous person—though perhaps for a good person one would dare even to die— 8 but God shows his love for us in that while we were still sinners, Christ died for us. (Romans 5:6-8)
The Father sent His Son not for the sake of occasional misfits but for the sake of hardened rebels who abandoned themselves to sin. He sent His Son to redeem us, to pay the price for our sins upon His own body on the cross. This He did so that He could justly forgive us our sins. As verse 14 of our text declares, it is in Him, “we have redemption, the forgiveness of sins.” Remember this fact, remember who we were, remember what the Father has done for us by His Son, and let us lift up our voices and praise Him in the words of Isaac Watts:
“Love so amazing, so divine, demands my soul, my life, my all.” (When I Survey the Wondrous Cross, Isaac Watts)
But as amazing as this is, that is not all that the Father has done. Listen to what our text goes on to tell us:
13 He has delivered us from the domain of darkness and transferred us to the kingdom of his beloved Son, (Colossians 1:13)
The Father not only sent His Son to pay the price for our sins as our Redeemer, but He also delivered us from our abject, Godless life in the domain of darkness. He did not forgive us and leave us as we were in the futility of our minds and the hardness of our hearts. To say that He forgives us and then leaves us alone is an insult to the Father's love. He delivered us from the domain of darkness. He took away the futility of our minds, our darkened understanding, our ignorance that was in us due to our hardness of heart. He illuminated our minds that we may understand His gospel as He intended and gave us new hearts that are inclined towards Him and desire to please Him, so that we would be willing to trust in Him and endure in faith. He took away our callousness by sending His Spirit to dwell within us to renew us day by day so that we may be cleansed not only of sin's guilt but also sin's power and pollution as we are transformed inwardly throughout our life in Christ. And that very Spirit of God is also our assurance that we are indeed converted and now adopted as God's own children. The Spirit in us is our guarantee that we now “share in the inheritance of the saints in light”, the fullness of salvation, our glorification promised to us when Christ returns. In this way our Father “has delivered us from the domain of darkness and transferred us to the kingdom of his beloved Son”. We are no longer thralls of the devil as we once were. Having been redeemed by Christ and led by His Spirit, we have been transferred to His dominion, to be ruled and protected by Him as citizens of His everlasting Kingdom as we sojourn in this dark and evil world, patiently waiting for His return and the manifestation of His rule over all the earth. If we are believers today, all this is true of us so let us examine ourselves. If we know that although the manner of life described in Ephesians 4:17-19 was once true of us but is no longer, give thanks to God! See what God hath done! The life of God is in you. How apt we are to lift up our voices to God when we are in trouble. The nine lepers did as much. How rare it is in comparison for believers to cry out with a loud voice in praise and thanksgiving to God. How common it is to hear the voices of Christians vent their complaints, sighing, and distress. But where is the thanks? “Count your blessings, name them one by one; Count your blessings, see what God hath done;” Remember what the Father has done for you. What mercy, what grace! And give thanks to Him every day, whenever there is an opportune time to do so. This is a major part of what it means to walk in a manner worthy of our L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