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교회에게 말씀하시는 예수님 (4)
요한계시록 2:18-25
18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시되 19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20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21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자기의 음행을 회개하고자 하지 아니하는도다 22 볼지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또 그와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하지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에 던지고 23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 24 두아디라에 남아 있어 이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소위 사탄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지울 것은 없노라 25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서론
“일곱 교회에게 말씀하시는 예수님”이라는 제목으로 강해를 계속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시리즈에서 우리는 요한계시록 2-3장의 선별된 구절을 통해 예수님께서 아시아의 로마 지방에 있는 일곱 교회에게 주신 말씀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지난 주일에 우리는 버가모 교회에게 주신 예수님의 말씀을 공부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두아디라 교회를 향하신 예수님의 말씀으로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 첫구절에서 예수님께서는 두아디라 교회에 예수님 자신을 이렇게 소개하고 계십니다.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시되…” (계2:18)
예수님은 두아디라 교회에게 주님의 눈이 불꽃과도 같다고 상기시키셨습니다. 사람들의 눈에는 어둠 속에 감춰진 것들도 우리 주님의 눈에는 감춰지지 않습니다. 다윗은 시편 139편에서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내가 혹시 말하기를 흑암이 반드시 나를 덮고 나를 두른 빛은 밤이 되리라 할지라도 주에게서는 흑암이 숨기지 못하며 밤이 낮과 같이 비추이나니 주에게는 흑암과 빛이 같음이니이다…” (시139:11-12)
어둠은 예수님께 빛과 같습니다. 그분의 눈은 모든 것을 보시며, 분별하시고, 판단하십니다.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히4:13)
예수님은 교회들 사이를 거니시며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다 보십니다. 아무리 부끄럽고 굴욕적인 일일지라도 모든 것들이 일일이 그분 앞에 드러나게 되어 평가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 분은 두아디라에 있는 그 분의 교회의 감정을 추스려주시려고 되돌려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주님은 주님께서 보시는 대로 칭찬과 책망을 주십니다.
예수님은 두아디라 교회에게 주님의 발이 빛난 주석과 같다고 상기시키셨습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것을 두려워하여 눈치를 보고 조심조심히 행동합니다. 예수님은 그렇지 않으십니다. 그 분의 발은 "빛난 주석"과 같으며 그 분은 특히 그 분의 교회 내에서 그분의 권위를 반대하는 자들을 짓밟으실 준비가 되어 있으십니다.
예수님의 눈은 불꽃과 같으며 그 분의 발은 빛난 주석과 같습니다. 그 분의 교회는 모든 것을 보시는 주님의 눈과 주님의 절대적인 권위 앞에서 떨며 우리에게 무슨 말씀을 주시든 간에 순종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도 주님 앞에서 떨며 두아디라에 있는 그 분의 교회뿐 아니라 그 분의 참된 모든 교회의 유익을 위해 주시는 그 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입시다.
1. 칭찬을 받은 두아디라 교회 (19절)
본문 19절의 말씀입니다.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두아디라 교회에 대한 상세한 책망에 앞서서 예수님은 그들이 잘하고 있는 것들을 인정해주셨습니다. 주님은 두아디라의 신자들이 보이고 있는 네 가지 특성, 곧 사랑, 믿음, 섬김, 인내를 칭찬하십니다. 더욱이,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이러한 특징을 소유했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특성들이 더 성장한 것에 대해 칭찬하십니다. 그들의 나중 행위가 처음을 능가한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는 첫 사랑을 버렸으나 두아디라 교회는 사랑이 더욱 성장했습니다. 그들의 믿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점에서 두아디라 교회는 바울이 데살로니가 서신을 통해 기록한 데살로니가 교회의 모습을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있었습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지니 이것이 당연함은 너희의 믿음이 더욱 자라고 너희가 다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함이니…” (살후1:3)
두아디라 성도들은 처음 믿기 시작했을 때 배웠던 계명을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심으로 나타내신 희생적인 사랑을 기억하고 서로를 향한 희생적인 사랑의 모범을 따랐습니다. 이 교회는 냉정하고 지적인 정통으로 특징지어지는 교회가 아니었습니다. 영적인 삶을 공통적으로 공유하고 있기에 그들 사이에는 참된 영적 연대가 형성되어, 그들은 동료 신자로서 서로를 즐거워하고, 몸된 교회의 유익을 위해 서로 봉사하고, 이교도적인 사회 안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고난을 겪을 때 서로를 도왔습니다. 동료 신자들로서 서로에 대한 그들의 사랑은 실제적이었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사랑이 더 강해졌습니다.
두아디라 교회에서는 사도적 복음이 전파되어 가르쳐지고 있었고 교인들은 이것을 믿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처음 믿기 시작했을 때를 능가하는 일관성과 깊이로 그들의 삶을 다스렸습니다. 그들의 사랑과 믿음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두아디라 교회의 섬김과 인내 또한 칭찬하십니다. 섬김은 형제 사랑의 실제적인 성과이며 오래참는 인내는 이교도 사회의 압력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는 그 회복력을 의미합니다. 두아디라 교회는 처음에 비해 이 네 가지 본질적인 특성에서 성장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두아디라 교회는 이런 면에서 예수님 보시기에 참으로 칭찬할 만한 교회였습니다. 불신자들은 교인들이 서로 사랑함으로 이 사람들이 참으로 예수님의 제자라는 증거를 보았을 것입니다(요 13:35).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을 행사함에 있어서 외부의 신자들은 두아디라에 있는 교회를 정통 교회로 인정했을 것입니다. 그들의 사랑이 섬김의 헌신을 낳고 그들의 믿음으로 인해 끈기 있게 인내한 것은 두아디라 교회가 안정적이었다는 것을 증거해줍니다. 이 모든 특성이 처음보다 더 증가했다는 사실은 그 열매가 또한 풍성했음을 증명해 줍니다. 그러나 이런 모든 좋은 점을 고려하더라도, 모든 것을 보시는 예수님의 눈을 피할 수 없는 끔찍한 무언가가 이 교회의 표면 아래에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도 경고가 아닐 수 없습니다. 교회가 많은 필수적인 부분에서 분명히 잘하고 있고 창립 이래로 열매를 맺었다고 해서 그 교인들을 오염시키고 있는 추악한 악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안정과 성장을 이뤘고 그들의 영적인 특성이 분명하다고 해서 결코 나태함과 안일함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만일 그렇게 한다면, 그들을 더럽고 타락하게 만드는 악이 그들 안에 뿌리를 내리고 억제되지 않은 채 그 지체들 사이에 퍼지고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몇 년 동안 고의로 방치된 쥐나 해충의 문제처럼 이러한 문제를 근절하는 것은 초기에 싹을 잘라버리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고 충격적일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두아디라 교회에서 드러내신 문제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2. 책망과 경고를 받은 두아디라 교회 (20-23절)
본문 20절에서 23절까지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자기의 음행을 회개하고자 하지 아니하는도다 볼지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또 그와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하지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에 던지고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
그들의 모든 열매에도 불구하고 두아디라 교회는 큰 잘못을 저지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이세벨이라고 부르신 한 여자를 용인하여 성도들과 교제를 나누게 하고 그녀가 성도들을 가르치고 유혹하여 성적 부도덕을 행하고 우상 숭배 활동에 가담하도록 허락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두아디라 교회가 이 여인을 ‘용납’했음을 주목하십시오. 우리도 누군가를 용납하면서도 여전히 그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누군가를 용납하면서도 그들에게 격렬하게 동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두아디라 교회의 실패는 이 여인을 용납한 것입니다. 원어에 쓰인 언어는 그녀가 두아디라 교회의 교사 중 한 명으로 공식적으로 승인되지는 않았음을 강력하게 암시합니다. 그들은 여성이 교회 모임에서 가르치는 것을 금하는 성경의 명령을 알았을 것입니다(딤전 2:8-15). 그러나 모임 밖에서, 가정의 은밀한 곳에서, 친밀한 대화와 개인적인 상담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가르침이 있으며, 물론 성경은 나이 든 여자가 젊은 여자를 가르칠 것을 권장합니다(딛 2:3). 따라서 이것은 이세벨이 관여했던 종류의 가르침이었고 교회의 특정 구성원에 끼친 그 영향은 파괴적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교회를 접근하여 영향력을 끼치고, 그녀가 예언적 은사를 주장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이세벨은 아마도 두아디라 교회 안에서 자신의 믿음을 공언한 그리스도인이었을 것이며 어떤 식으로든 교회에 침투한 외부 교사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감안할 때 두아디라 교회는 이세벨의 부도덕한 가르침과 생활 방식을 오래 전부터 징계해야 했으며 교회의 징계를 듣지 않으면 교제에서 제외시켜야 했었습니다(마 18:15-17, 고전 5:9-13). 대신 그들은 그녀를 ‘용납’했습니다. 아마도 교회의 일부 사람들은 그녀에 대해 불평했을 것입니다. 아마도 장로들은 집회에서 그 여자에 대해 불편한 심경을 토로했을 것입니다. 아마도 지도자 중 일부는 그녀를 위해 기도하고 그녀를 위해 눈물을 흘렸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녀를 용납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녀가 교인들을 가르치고 유혹하여 큰 죄에 가담하도록 계속 허용했고, 이에 대해 예수님은 두아디라 교회를 책망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을 "이세벨"이라고 부르십니다. 이세벨은 이스라엘의 여왕이자 악명 높은 구약의 왕 아합의 아내였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악한 남편을 능가하는 무자비함을 드러냈습니다. 그녀는 강제로 이스라엘에 우상 숭배를 강요하여 주님의 예언자들을 죽이고 그들을 은신처로 밀어냈습니다. 이세벨은 이스라엘을 우상숭배와 음행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지극히 악한 여인이었습니다. 이 구약의 여왕의 성품이 이 악한 여인에게서도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녀를 이세벨이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녀의 영향력을 통해 이세벨이 이스라엘에게 행한 것처럼 그리스도의 백성을 우상 숭배와 성적 부도덕 행위로 이끌고 있었습니다. 두아디라 교회의 이세벨은 자신의 가르침으로 누구를 미혹하였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미혹당한 자들을 “나의 종들”(계 2:20)이라고 밝히셨습니다. 이세벨은 그리스도의 종들, 즉 거듭난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을 유혹하여 성적 부도덕을 행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했습니다. 거듭나 성령이 내주하는 그리스도인들은 무한정으로 지속되는 고의적으로 상습적인 죄를 범하며 그것을 회개하지 않는 반항적인 불법의 삶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요일 3:8). 성령의 거듭나게 하고 성결하게 하는 은혜가 그렇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조차도 하나님의 말씀의 사역을 통해서든, 그리스도인 형제들의 책망을 통해서든, 하나님의 징계의 개입을 통해서든, 또는 이 모든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든, 필연적으로 겸손해지고 슬퍼하여 회개할 때까지 어떤 형태의 습관적인 죄에 빠질 수 있습니다. 이세벨은 그리스도의 종들 중 일부가 성적 부도덕을 행하고 그녀와 함께 우상의 제물을 먹도록 유인하여 이런 종류의 상습적인 죄를 짓도록 유혹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세벨은 어떻게 두아디라의 몇몇 신자들에게 그녀의 가르침과 행실을 따르도록 유혹할 수 있었을까요? 본문 24절에서 우리는 힌트를 얻게 됩니다.
“...두아디라에 남아 있어 이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소위 사탄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지울 것은 없노라…”
이세벨은 일부 사람들이 (아마도 그녀와 그녀의 제자들이) "사탄의 깊은 것"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사람들을 유혹하여 가르쳤습니다. 아마도 그녀는 사탄의 깊은 것, 특히 심한 형태의 우상 숭배와 부도덕에 빠져 있는 이교도 사람들에게 다가가려면 기독교인들이 사탄의 깊은 것을 배워야 한다고 가르쳤을 것입니다. 그녀는 그리스도인들이 이교도들을 효과적으로 이해하고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이교도 방식의 타락을 경험할 필요가 있다고 추론하였을 수도 있습니다. 언젠가 저는 더 효과적인 선교사가 되기 위해 아내와 이혼하고 자신이 전도하고자 하는 원주민 여성과 재혼해야 한다고 결정한 한 남자에 대해 들은 적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모든 종류의 죄를 합리화하기 위해 사역을 이용합니다. 이세벨은 자신의 성적 부도덕을 비슷한 방식으로 합리화하고 그것을 그녀의 가르침에 통합시킬 수 있었습니다. “저는 여선지자이며 이 도시의 가장 어두운 변방에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라는 특별한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 이교도들의 삶에 동화되어야 합니다. 나는 그들의 사원 안에 있는 테이블에 앉아서 그들이 우상에게 바친 음식을 먹어야 합니다. 성적 부도덕을 저지르더라도 그들의 다양한 축제에 참여해야 합니다. 그래야 이 사람들이 나에게 마음을 열고 내 말을 들을 것입니다. 나는 이 길 잃은 영혼들을 위해 기꺼이 나의 미덕을 희생할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에 있는 누군가가 나와 함께 사탄의 영역 깊숙이 파고드는 나의 특별한 임무에 참여하기를 원한다면 나와 똑같이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세벨이 어떻게 순진하고 미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을 극악무도한 부도덕으로 유혹할 수 있었는지 볼 수 있습니다.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자기의 음행을 회개하고자 하지 아니하는도다…” (계2:21)
그녀의 거짓 가르침의 뿌리에는 성적 부도덕함에 대한 애착이 있었습니다. 오늘날 교회를 괴롭히는 그토록 많은 거짓 가르침의 뿌리는 무엇입니까? 개인적이며 사적인 죄를 수용하려는 욕망인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소위 기독교인 교사들이 단순히 그들이 지은 어떤 개인적이고 사적인 죄를 수용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회개와 성결한 순종에 대한 명백한 성경적 가르침을 부인하거나 왜곡하고 있습니까? 사적으로 성결하지 않은 습관이나 은밀한 간통, 숨겨진 탐욕과 사기 또는 그들이 변명하고 수용하려는 다른 형태의 죄 때문에 명확하고 단순한 성경의 계명을 복잡하게 날조하여 가르칩니다. 또한 그들의 불경건하고 부도덕한 가르침에 유인되어 따르게 된 순진하고 유아적인 신자들의 삶에 많은 혼란과 고통을 야기합니다. 왜입니까? 단순히 이 교사들이 그들의 죄에 대한 진실을 직시하고 회개하기를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대신에 그들은 그들의 죄를 수용하기 위해 성경을 완전히 왜곡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여자 이세벨에게 성적 부도덕함에 대하여 회개할 시간을 주셨습니다. 주님은 두아디라 교회에게 그녀를 징계하고 교회에서 내쫓을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어느 것도 실행되지 않았기 때문에 주님은 이세벨과 그녀의 추종자들을 친히 다루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교회 내에서 자행되며 회개하지 않는 성적 부도덕함에 대해 관대하시며 용납하시는 분으로 생각한 적이 있다면, 그 분께서 하신 이 말씀이 그 오해를 영원히 깨뜨릴 것입니다.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자기의 음행을 회개하고자 하지 아니하는도다
볼지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또 그와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하지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에 던지고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 (계2:21-23)
이세벨이 회개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으나 곧 없어졌고 심판이 그녀에게 임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이세벨을 병상에 던지시길 원하셨습니다. 그녀의 성적 부도덕의 침상은 질병과 연약함의 침상이 되었으며, 어쩌면 그녀의 죽음까지도 초래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두아디라에 있는 그 분의 교회 안에서 그 분의 종들을 유혹하여 그녀의 가르침을 따르도록 유혹한 이세벨의 시대가 완전히 끝을 보길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또한 이세벨의 가르침에 미혹된 두아디라 성도들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가혹한 징계로 예수님으로부터 심판을 받기 일보직전이었습니다. “... 또 그와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하지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에 던지고…”(계 2:22) 예수님은 그들을 큰 환난에 던지실 예정이었습니다. 그들이 음행과 우상의 제물을 먹은 이세벨의 행위를 회개한다면 하나님의 징계 심판을 면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주실 엄청난 환난과 고난을 왜 피하려 하지 않는 것입니까? 그들이 회개하기만 하면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모든 신자들에게 주시는 경고입니다. 이교도적인 미국 문화에 만연한 성적 부도덕함에 빠져들었다면 지금이 회개해야 할 때입니다. 우리는 불신자와 거짓 형제들이 아무런 징계도 받지 않고 점점 더 이교도적인 미국의 성적 문란함에 뛰어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우리도 그렇게 하도록 허락하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경건한 조언과 정직한 설교를 소홀히 했음을 인정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무감각해졌음을 인정할 수 있습니다. 나쁜 양심을 가지고 살았음을 인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삶 속의 상황이 그렇게 나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일이 잘 돌아가고, 학교 일이 괜찮게 진행되며, 우리의 건강도 괜찮을 수 있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괜찮을 수 있습니다. 재정 또한 괜찮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회개를 미루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내가 처한 상황이 괜찮다고 해서 예수님께서 징계의 심판을 무기한 보류하신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우리가 회개하지 않는다면 예수님은 우리를 고통스러운 환난에 빠뜨리기 직전일 수도 있습니다. 단지 어려움에 빠지기 싫은 것보다 더 나은 이유가 있어야 회개를 하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가 더 나은 이유를 향해 마음을 닫았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우리가 진리와 은혜와 사랑과 그리스도의 이름의 영광과 영예로 설득되지 않는다면 예수님은 고난과 환난으로 우리를 설득하실 것입니다. 일부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결코 위협하지 않는 분이시라고 주장합니다. 복음은 오직 사랑으로 우리를 회개와 순종으로 인도한다고 말입니다. 본문에서 볼 수 있듯이 그것은 명백한 거짓입니다. 두아디라 교회의 이 불순종하고 부도덕한 그리스도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때때로 예수님은 그분의 백성이 회개하도록 위협을 가하십니다. 우리는 오늘 회개한다해도 훗날 또다시 같은 죄에 빠질까 봐 두려워서 회개하기를 주저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지금 우리가 염려해야 할 일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해야할 일은 회개하는 것입니다. 내일의 순종을 위해서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신뢰하십시오. 오늘이 회개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세 번째 그룹의 사람들은 이세벨의 자녀들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치시겠다고 선언하십니다. 제가 참고한 주석들은 이세벨의 자녀들이 곧 그녀의 제자들을 가리킨다는 데 동의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그녀의 가르침을 따라 빗나간 예수님의 종들이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이세벨의 제자들을 향해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들은 회개해야하며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큰 환난에 빠뜨리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세벨의 자녀들은 전혀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적 복음이 아니라 그녀의 타락한 가르침의 산물인 이세벨의 신봉자들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자녀가 아니라 그녀의 자녀입니다. 이세벨의 자녀들은 아마도 두아디라 교회에 섞여 그리스도를 따른다고 주장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치시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이런 일을 하시려고 하셨습니까? 왜 그분은 이세벨을 벌하시고, 두아디라에 있는 그 분의 자녀들 중 회개하지 않는 자들을 징계하시고, 이세벨의 자녀들을 죽이려고까지 하셨습니까?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
예수님은 모든 교회에게 그 분께서 모든 것을 보고 계신다는 것을 알게 하시려고 이렇게 하실 것입니다. 주님의 불꽃과도 같은 눈으로부터 숨길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사람의 마음과 뜻도 숨길 수 없으며 절대로 아무것도 숨길 수 없습니다. 그 분은 신실하며 순종하는 그 분의 자녀들을 칭찬하실 것입니다. 길을 잃고 있는 그 분의 자녀들은 책망하며 꾸짖으실 것입니다. 그들이 회개하면 그분은 징계를 철회하실 것입니다. 그들이 계속해서 악을 행하면 회개할 때까지 징계하실 것입니다. 주님은 그 분의 참된 교회에 잠입하여 그 분의 종들을 미혹하고 잘못된 길로 인도하는 사기꾼들의 공허한 주장에 속지 않으실 것입니다. 주님은 그들이 반역자이기 때문에 그들을 심판하고 짓밟으실 것입니다.
3. 권면을 받은 두아디라 교회 (24-25절)
본문은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두아디라에 남아 있어 이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소위 사탄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지울 것은 없노라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시간 관계상 마지막 요점은 매우 간략하게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이세벨의 가르침에 미혹되지 않은 두아디라 교회 성도들에게 예수님은 다른 짐을 주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이 가진 것을 굳게 붙잡고 있는 한, 주님은 그 분의 교회인 이 신자들을 기뻐하셨습니다. 그들이 무엇을 가지고 있었습니까? 우리는 주님께서 주신 칭찬에서 알 수 있게 됩니다.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계2:19)
예수님은 두아디라에 있는 교인들에게 그들이 이미 행하고 있는 것, 즉 서로 사랑하고, 주님의 이름을 믿고, 주님의 권속을 섬기고,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 분을 향한 신실함으로 인내하면서 계속 행할 것을 명하셨습니다. 그들이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이러한 자질에서 계속 성장해가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같은 일을 하고 있다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다른 짐을 지우지 않으실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서로에 대한 사랑, 주님에 대한 믿음, 그 분의 백성을 향한 섬김, 그리고 사도적 진리 안에서 오래참는 인내를 가지고 이것들을 굳게 잡고 그분이 오실 때까지 이러한 일을 행하는 데 계속 성장해 갑시다.
Jesus to the Seven Churches (Part 4)
Revelation 2:18-25
18 “And to the angel of the church in Thyatira write: ‘The words of the Son of God, who has eyes like a flame of fire, and whose feet are like burnished bronze. 19 “‘I know your works, your love and faith and service and patient endurance, and that your latter works exceed the first. 20 But I have this against you, that you tolerate that woman Jezebel, who calls herself a prophetess and is teaching and seducing my servants to practice sexual immorality and to eat food sacrificed to idols. 21 I gave her time to repent, but she refuses to repent of her sexual immorality. 22 Behold, I will throw her onto a sickbed, and those who commit adultery with her I will throw into great tribulation, unless they repent of her works, 23 and I will strike her children dead. And all the churches will know that I am he who searches mind and heart, and I will give to each of you according to your works. 24 But to the rest of you in Thyatira, who do not hold this teaching, who have not learned what some call the deep things of Satan, to you I say, I do not lay on you any other burden. 25 Only hold fast what you have until I come.
Introduction
I would like to remind everyone that we are continuing with our series entitled, “Jesus to the Seven Churches”. In this series we are going through select passages of chapter 2 – 3 of the book of Revelation, studying the words of Jesus to the seven churches in the Roman province of Asia. Last Sunday we had studied Jesus' words to the church in Pergamum. Today, we are moving on to Jesus' address to the church in Thyatira.
Jesus introduces Himself to the church in Thyatira in the first verse of today's text:
“And to the angel of the church in Thyatira write: ‘The words of the Son of God, who has eyes like a flame of fire, and whose feet are like burnished bronze. (Revelation 2:18)
Jesus reminds His church in Thyatira that He has “eyes like a flame of fire”. What is hidden in the darkness to the eyes of people is not hidden to the eyes of our Lord. As David declares in Psalm 139:
If I say, “Surely the darkness shall cover me, and the light about me be night,” even the darkness is not dark to you; the night is bright as the day, for darkness is as light with you. (Psalm 139:11-12)
Darkness is as light to Jesus. His eyes sees all, discerns all, judges all.
“And no creature is hidden from his sight, but all are naked and exposed to the eyes of him to whom we must give account.” (Hebrews 4:13)
As Jesus walks among His churches, He sees absolutely everything that is going on within them. Every detail is exposed to His evaluation no matter how shameful and humiliating. He does not mince His words to His church in Thyatira to spare their feelings. He speaks things as His all seeing eyes perceive them for their commendation and reproof.
Jesus reminds His church in Thyatira that His “feet are like burnished bronze”. People live all their lives walking on eggshells, afraid to offend people. Not so with Jesus. His feet are like “burnished bronze” and with them He is ready to stamp out opposition to His authority, especially within His churches.
Jesus has “ eyes like a flame of fire” and feet like “burnished bronze”. His churches should tremble before His all seeing eyes and His indomitable authority, ready to submit to His word no matter what it should say to us. Let us also tremble before our Lord and listen to His words spoken not only for the benefit of His church in Thyatira but for the benefit of all His true churches.
Point 1 – The church in Thyatira commended (verse 19)
We read in verse 19 of our text, “‘I know your works, your love and faith and service and patient endurance, and that your latter works exceed the first.
Before His detailed reproof of His church in Thyatira, Jesus recognizes their strengths. He commends four qualities manifested in the believers in Thyatira: love, faith, service, and patient endurance. Furthermore, Jesus commends them for not only possessing these qualities but growing in these qualities. Their latter works exceeded the first. While the church in Ephesus abandoned the love they had at first, the church in Thyatira exceeded the love they had at first. The same was true of their faith. In this respect, the church in Thyatira somewhat mirrored the church in Thessalonica at the time of Paul's second epistle to them:
3 We ought always to give thanks to God for you, brothers, as is right, because your faith is growing abundantly, and the love of every one of you for one another is increasing. (2 Thessalonians 1:3)
The believers in Thyatira did not neglect the command they had learned in the earliest days of their existence. They remembered the sacrificial love Christ had shown by laying down His life for them and followed His example in their sacrificial love towards each other. This was not a church characterized by a cold, intellectual orthodoxy. The common bond of spiritual life established true spiritual solidarity between them so that they enjoyed each other as fellow believers, served each other for the good of the body, and supported each other as they suffered as Christians in a pagan society. Their love for each other as fellow believers was real and over the course of time, that love had grown stronger not lesser.
In regards to their faith, the apostolic gospel was being preached and taught in the church in Thyatira. As believers, the knowledge of God in Christ governed their lives with a consistency and depth that surpassed their beginnings as a body of believers. In addition to their love and faith, Jesus commends the church in Thyatira for their service and patient endurance as well. Service is the practical outworking of brotherly love and patient endurance refers to the resilience of their faith amid the pressures of pagan society. Compared to their beginnings, the church in Thyatira had grown in these four essential qualities.
So, the church in Thyatira, in these ways, was commendable in the eyes of Jesus. By their love for each other, unbelievers would have seen evidence that these people really were disciples of Jesus (John 13:35). In the exercise of their faith towards Christ, believers from the outside would have recognized the church in Thyatira as authentic. The fact that their love produced a commitment to service and their faith proved patiently enduring attested to the stability of the church in Thyatira. The fact that all these qualities had increased since their beginning attested to their fruitfulness. But even with all the good taken into consideration, something horrific lurked beneath the surfaces of this church which could not escape the all-seeing eyes of Jesus.
This is a warning also to us. Just because a church is evidently doing well in many essential areas and has proven fruitful since its inception does not mean there could not be scandalous evil polluting its members. Christ's churches should never be lulled into a sleepy complacency because they have attained stability and growth and because their spiritual qualities are obvious. If they do, they may find that a foul, corrupting evil has taken root within them and has been spreading among its members unchecked. And like an infestation that has been knowingly left alone for several years, eradicating the problem will be far more difficult and traumatic than if the problem had been nipped at the bud early on. This describes the problem that Jesus exposes in the church at Thyatira.
Point 2 – The church in Thyatira reproved and warned (verse 20 – 23)
We read on in our text, “20 But I have this against you, that you tolerate that woman Jezebel, who calls herself a prophetess and is teaching and seducing my servants to practice sexual immorality and to eat food sacrificed to idols. 21 I gave her time to repent, but she refuses to repent of her sexual immorality. 22 Behold, I will throw her onto a sickbed, and those who commit adultery with her I will throw into great tribulation, unless they repent of her works, 23 and I will strike her children dead. And all the churches will know that I am he who searches mind and heart, and I will give to each of you according to your works.”
For all their good, the church in Thyatira had a gross fault on their hands. They tolerated a woman whom Jesus called Jezebel, permitting her to remain in the fellowship where she was teaching and seducing their members to practice sexual immorality and participate in idolatrous activity. “But I have this against you, that you tolerate that woman Jezebel, who calls herself a prophetess and is teaching and seducing my servants to practice sexual immorality and to eat food sacrificed to idols.” (Revelation 2:20)
Notice that the church in Thyatira tolerated this woman. You can tolerate someone and still disapprove of them. You can tolerate someone and intensely disagree with them. The failure of the church in Thyatira was that they tolerated this woman. That language strongly suggests that she was not officially endorsed as one of their teachers. They would have known the biblical mandate that forbade women from teaching to the assembly of the church (1 Timothy 2:8-15). But there is teaching that can occur outside the assembly, in the privacy of homes, within intimate conversations and personal counsel, and of course, scripture encourages older women to teach younger women (Titus 2:3). So, it would appear that this was the kind of teaching which Jezebel was engaged in and its destructive effect upon certain members of the church was devastating. Given her level of access and influence in the church and the fact that she claimed a prophetic gift, Jezebel was probably a professing Christian within the membership of the church in Thyatira and not some outside teacher who had somehow infiltrated the church. Given this fact, the church in Thyatira should have long since disciplined Jezebel for her immoral teaching and way of life and put her out of the fellowship if she refused to listen (Matthew 18:15-17; 1 Corinthians 5:9-13). Instead, they just tolerated her. Perhaps some in the church griped about her. Perhaps the elders vented about her in their meetings. Perhaps some of the leaders prayed for her and shed tears over her. Nonetheless, they tolerated her. However begrudgingly, they continued to allow her to teach and seduce their members into participating in egregious sins and for this, Jesus rebuked the church in Thyatira.
Jesus calls this woman “Jezebel”. Wife to the infamous Old Testament king, Ahab, Jezebel was a queen of Israel. She displayed a ruthlessness even beyond her evil husband. She mandated idolatry in Israel by force, killing the prophets of the Lord and sending them into hiding. Jezebel was an extremely evil woman who pushed Israel into the depths of idolatry and immorality. The character of this Old Testament queen was manifest in this wicked woman which is why Jesus calls her, Jezebel. Through her influence, this woman was leading Christ's people into acts of idolatry and sexual immorality as Jezebel did to Israel. Who did this Jezebel in the church seduce by her teaching? Jesus identifies them as “my servants” (Revelation 2:20). Jezebel was seducing Christ's servants – genuine, born again Christians – into practicing sexual immorality and eating food sacrificed to idols. Born again, Spirit indwelt Christians cannot make a practice of sinning, living a life of defiant lawlessness that continues indefinitely and is without repentance (1 John 3:8). The regenerating and sanctifying grace of the Holy Spirit sees to that. But even regenerated Christians can sometimes fall into some form of habitual sin until, inevitably, they are humbled and grieved into repentance, whether through the ministry of God's word or the rebuke of Christian brethren or the intervention of God's discipline, or a combination of all three. Jezebel succeeded in seducing some of Christ's servants into this kind of habitual sinning as they were seduced into practicing sexual immorality and eating food sacrificed to idols along with her. How was she able to allure some of the believers in Thyatira to follow her teaching and example? We get a hint in verse 24 of our text:
24 But to the rest of you in Thyatira, who do not hold this teaching, who have not learned what some call the deep things of Satan...
Jezebel taught those she seduced what some called (perhaps herself and her disciples) “the deep things of Satan”. Maybe she taught that in order to reach pagan people immersed in the deep things of Satan – particularly gross forms of idolatry and immorality – Christians would have to learn the deep things of Satan themselves. She could have reasoned that Christians needed to experience the depravity of pagan ways in order to effectively understand and relate with pagans. I once heard of a man who decided that in order to become a more effective missionary, he would have to divorce his wife and remarry a woman from the indigenous people he was hoping to reach. People use ministry to rationalize all kinds of sins. Jezebel could have rationalized her sexual immorality in a similar way and integrated it into her teaching: “I am a prophetess and I have a special calling to deliver God's message to the darkest fringes of this city. So, I need to immerse myself in their way of life. I need to sit at their tables within their temples. I need to eat of their idol food. I need to participate in their various festivities even if doing so means committing sexual immorality. That way these people will open their hearts to me and listen to me. I am willing to sacrifice my virtue for the sake of these lost souls. And if anyone in the church wants to join me in my special mission to the deepest reaches of Satan's domain than they will also need to do the same.” Can we see how Jezebel could have seduced naive, immature Christians into flagrant immorality?
Now notice how Jesus exposes what is at the root of Jezebel's evil teaching:
“I gave her time to repent, but she refuses to repent of her sexual immorality.” (Revelation 2:21)
Her love of sexual immorality was at the root of her false teaching. What is at the root of so much false teaching that plagues the church today? The desire to accommodate some personal pet sin. How many so-called Christian teachers deny or warp the plain biblical teachings of repentance and sanctified obedience simply because they want to accommodate some personal, pet sin of theirs. All this convoluted, contextual, interpretive jiujitsu of clear and simple biblical commandments because of some private unclean habit or some secret adulterous affair or some hidden greed and fraud or some other form of sin they want to excuse and accommodate. They cause so much confusion and pain in the lives of naive and infantile believers who are duped for a season into following their ungodly, immoral teachings. Why? Simply because these teachers refuse to face the truth about their unworthy little sins and repent. Instead they bend scripture all out of shape to accommodate some darling sin of theirs.
Jesus gave this woman Jezebel time to repent of her sexual immorality. He gave the church in Thyatira opportunity to discipline and remove her from the church. But because neither was forthcoming, He would deal with Jezebel and her followers Himself. If we ever thought of Jesus as a permissive, non-judgmental figure towards unrepentant sexual immorality practiced within His churches, what He says next should shatter that misconception forever:
21 I gave her time to repent, but she refuses to repent of her sexual immorality. 22 Behold, I will throw her onto a sickbed, and those who commit adultery with her I will throw into great tribulation, unless they repent of her works, 23 and I will strike her children dead. (Revelation 2:21-23)
Jezebel's opportunity to repent and had come and gone and judgment was about to befall her. Jesus was going to throw Jezebel onto a sickbed. The bed of her sexual immoralities would become a bed of illness and infirmity and possibly even her death. Jesus was going to see to it that her days of going to and fro within his church in Thyatira seducing His servants into following her teaching would come to an end.
Jesus also addresses the believers in Thyatira who allowed themselves to be seduced by Jezebel's teaching. They were facing the prospect of judgment from Jesus in the form of severe discipline. “...and those who commit adultery with her I will throw into great tribulation, unless they repent of her works,” (Revelation 2:22) Jesus was going to throw them into great tribulation. They could circumvent His disciplinary judgment if they repented of Jezebel's works – practicing sexual immorality and eating food sacrificed to idols. Why not spare themselves the immense anguish and hardship that Jesus was about to send their way? They could if they would but repent. Let this be a warning to all believers. If we have been seduced into the sexual immorality that is running rampant in pagan American culture, now is the time to repent. We may see unbelievers and false brothers taking the plunge into the sexual chaos of an increasingly pagan America with impunity. That does not mean Jesus will let us do the same. We admit we've tuned out godly counsel and upright preaching. We admit we've grown callous to God's word. We admit we're living with a bad conscience. However, things may be going okay for us. Work may be okay. School may be okay. Our health may be okay. Our loved ones are okay. Our finances are okay. So, we've put off repenting. Well, just because things have been generally okay for us does not mean Jesus will withhold His disciplinary judgment indefinitely. Jesus might be on the verge of throwing us into painful tribulation unless we repent. We may reason that we should repent for a higher reason than saving our own skin. Well, by our own admission, we've closed our hearts to those higher reasons. If we will not be persuaded by truth, by grace, by love, by the glory and honor of Christ's name, than Jesus will persuade us by affliction and tribulation. Some claim that Jesus would never resort to threatening. That the gospel only woos us into repentance and obedience with words of loving affirmation. As we can see in our text, that is patently false. Sometimes, Jesus does resort to threats to bring His people to repentance as was the case for these disobedient, immoral Christians in the church in Thyatira. We may hesitate to repent because we are afraid that though we may repent today, we may fall into the same sin again at some point in the future. That is not our business now. Our business now is to repent. Trust God's help for tomorrow's obedience. Repentance is for today.
The third group of people Jesus addresses are Jezebel's children. Jesus declares that He will strike them dead. The commentaries I've consulted are in agreement that Jezebel's children refers to her disciples. These are not servants of Jesus who have gone astray after her teachings. He has just addressed that group of people. They need to repent or He would throw them into great tribulation. The children of Jezebel are not Christians at all. They are dyed in the wool devotees of Jezebel, the product of her corrupt teachings not the apostolic gospel of Jesus Christ. They are her children not Christ's children. These children of Jezebel probably intermingled with the church in Thyatira and claimed to be followers of Christ. Jesus was going to strike them dead. Why was Jesus going to do this? Why was He going to punish Jezebel, discipline the unrepentant among His children in Thyatira, and strike Jezebel's children dead?
23 “And all the churches will know that I am he who searches mind and heart, and I will give to each of you according to your works.”
Jesus would do this so that all the churches would know that He sees all. There is nothing hidden from His searing gaze. Neither the minds or hearts of people. Absolutely nothing. To His children who were faithful and obedient, He would give His commendation. To His children who were going astray, He would give reproof. If they repented He would relent of His discipline. If they persisted in their wickedness, He would discipline them until they repented. To impostors who infiltrated His true churches to seduce and lead His servants astray, He would not be deceived by their empty claims of devotion. He would bring them into judgment and crush them for the rebels that they were, if not in this life than forever in eternity.
Point 3 – The church in Thyatira encouraged (verse 24 – 25)
Our text closes as follows, “24 But to the rest of you in Thyatira, who do not hold this teaching, who have not learned what some call the deep things of Satan, to you I say, I do not lay on you any other burden. 25 Only hold fast what you have until I come.”
For the sake of time, our final point will have to be very brief. For those in the church in Thyatira who were not seduced by the teaching of Jezebel, Jesus gave them no other burden. For as long as they held fast to what they had, He was pleased with them as His church. What did they have? We read of it in His commendation of them:
“‘I know your works, your love and faith and service and patient endurance, and that your latter works exceed the first. (Revelation 2:19)
Jesus commanded the faithful of His church in Thyatira to continue to do as they were already doing: loving one another, believing in His name, serving His household, and patiently enduring in faithfulness towards Him no matter the cost. That they would continue to grow in these qualities as they had done so up until now. And so, we can be certain, Jesus lays no other burden on us if we too are doing the same. Let us hold fast to love towards one another, faith towards our Lord, service towards His people, and patient endurance in the apostolic truth and continue to grow in the exercise of these qualities until He co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