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빌립보서 1:21-26
21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22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택해야 할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23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 24 내가 육신으로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25 내가 살 것과 너희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 너희 무리와 함께 거할 이것을 확실히 아노니 26 내가 다시 너희와 같이 있음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자랑이 나로 말미암아 풍성하게 하려 함이라
계속해서 빌립보서 강해를 진행하고 있는 가운데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볼 하나님의 말씀은 빌립보서 1장 21절에서 2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여러분께서 기억하시는 것처럼 감옥에 갇힌 사도 바울이 가이사와 임박한 재판을 앞두고 가졌던 가장 큰 소망과 기대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삶으로든 죽음으로든 자신의 몸으로 그리스도를 존귀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이것이 너희의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나를 구원에 이르게 할 줄 아는 고로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빌1:18-20)
바울은 가이사 앞에서의 재판이 자신의 생사가 달린 문제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자신의 위태로운 상황을 감안할 때, 겁에 질려 주저앉아 버리고자 하는 유혹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시험의 순간에 느끼게 되는 두려움은 바울이 무슨 대가를 치르더라도 주 예수님을 존귀하게 하려는 결심을 약화시킬 수도 있었습니다. 시험의 순간에 그의 용기는 자칫 흔들릴 수도 있었고 그의 증언은 사람의 마음을 달래고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려는 욕망에 의해 손상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동료 성도들의 기도와 성령의 도우심을 통해 그 시험에서 구원받을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사도들이 총독과 왕들 앞에서 그리스도를 증거할 때 그들을 돌보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마태복음 10:17-20). 바울을 위한 많은 중보가 있었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도우셨기 때문에 바울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은 사슬에서 벗어나는 자유가 아니라 자신의 몸으로 그리스도를 존귀하게 하는 용기를 갖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생사 여부와 관계없이 말입니다. 만약 바울이 가이사 앞에서 재판을 받은 결과가 생명이었다면, 그는 자신이 사는 방식으로 주님을 공경하고 싶었습니다. 만약 가이사가 사형을 선고한다면, 그는 자신의 죽음을 통해서 주님을 높이고 싶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 첫 구절의 말씀처럼 어느 결과든지 만족했습니다.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빌1:21)
바울에게 있어서 사는 것은 그리스도였습니다. 그리스도는 바울의 삶의 모든 목적이 되시는 분이었습니다. 그리스도를 존귀하게 하려는 바울의 목표에는 주님에 대한 담대한 간증뿐만 아니라 주님과 같이 되려는 목표도 포함되었습니다(고린도후서 3:18; 에베소서 5:25-26; 요한일서 3:2-3).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아가는 것에는 그분의 성품을 따르는 것도 포함되지만, 그분의 목적을 따라가는 것도 포함됩니다. 사도 바울이 살아야 했다면, 그의 모든 수고의 목표는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구속하시는 목적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몇 주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는 교회를 거룩하게 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교회를 위해 내어주셨습니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에베소서 5:25-26)
주님께서 교회를 향하신 목적에 따라, 바울의 삶의 목표는 그리스도께서 사랑하시는 교회를 거룩하게 하기 위해 수고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이 땅에 남아있게 된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의 교회의 성화를 위해 계속해서 수고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택해야 할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빌립보서 1:22)
바울이 자신의 삶의 수고에 대해 말할 때 그리스도의 교회의 성화를 염두에 두었다는 것은 본문 25절에서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택해야 할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 내가 육신으로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내가 살 것과 너희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 너희 무리와 함께 거할 이것을 확실히 아노니…” (빌1:21-25)
바울의 동료 성도들을 위한 수고의 목표는 무엇이었을까요? 그들의 믿음 안에서의 성장과 기쁨이었습니다. 그는 그들이 복음의 믿음 안에서 성장하고 성숙해지도록 수고했습니다. 1장 앞부분에서 사도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의 사랑이 지식과 모든 분별력으로 더욱더 풍성해지기를 기도한다고 말했습니다.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빌립보서 1:9)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이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그분의 계시된 뜻에 대한 지식과 모든 상황에서 그분의 뜻을 행하기 위한 분별력이 자라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랑, 지식, 분별력의 성장의 결과는 무엇일까요? 답은 다음과 같습니다.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 (빌립보서 1:10-11)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그분의 말씀에 대한 지식과 분별력이 더욱 충만해지면, 매일의 다양한 도전적인 상황 속에서도 최선의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능력이 생기고, 이는 다시 그리스도 예수의 날에 보상받을 ‘진실하며 허물 없는’ 삶의 방식으로 이어집니다. 빌립보서 1장 10절 말씀을 통해 살펴보았던 내용에 따르면 진실한 삶을 산다는 것은 죄 없는 삶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히 신실한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진실한 사람들의 삶이 하나님의 말씀의 빛에 비추어질 때 드러나게 되는 것은 그들이 죄 없고 완벽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신실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신실한 삶입니다. 허물없는 삶을 사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원어로 ‘허물없는’이라는 단어는 aproskopos (아프로스코포스)로, “a-”(아 - 아닌)와 proskopto(프로스콥토 - 넘어지다)의 합성어입니다. 이 단어는 "실족하게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스트롱 사전). 허물없는 사람은 자신의 나쁜 행실로 다른 사람을 실족하지 않게 하는 사람입니다. 오히려 그는 다른 신자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는 사람입니다. 즉, 사랑으로 인한 순종의 본보기를 보이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동료 성도들을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모든 교리와 계명 안에서, 세우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동료 성도들은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지식과 분별력이 그분에 대한 사랑과 함께 커지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오는 의의 열매로 가득 찬 진실하고 허물없는 삶을 사는 지점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바울이 그리스도의 교회를 위해 가졌던 목표는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해 세우신 목표와 같았습니다. 즉, 교회의 성화입니다.
형제 여러분, 교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복음의 믿음 안의 진보를 이루기를 꺼립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신앙 고백을 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내용만 알면 충분하다고 잘못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삶의 다양한 도전과 난관 속에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자신들이 왜 이렇게 혼돈을 느끼는 것인지 궁금해합니다. 하지만 이 장의 앞부분과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믿음의 진전과 - 지식과 분별력 모두에서 - 더불어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점점 더 넘쳐날 때, 성도들이 진실하고 허물없는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지혜가 생깁니다. 즉, 우리 안에 사는 그리스도의 능력을 통해 오는 의의 열매로 가득 찬 진실하고 허물없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 안에서 진보를 이루지 못하면 우리의 거룩함의 성장이 방해를 받을 것입니다. 형제 여러분, 그리스도께서는 교회를 거룩하게 하시려고 자신의 목숨을 바치셨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와 일치하여 동료 성도들의 거룩함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그 수고는 성경을 통하여 우리를 위해 보존되어 왔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사도들에게 주신 말씀은 오늘날 우리의 성화를 위해 기록된 말씀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믿음 안에서의 진보를 위해 수고했을 뿐만 아니라 믿음 안에서의 기쁨을 위해 수고했습니다.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택해야 할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 내가 육신으로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내가 살 것과 너희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 너희 무리와 함께 거할 이것을 확실히 아노니…"(빌립보서 1:22-25)
성도들 가운데서 바울이 수고했던 목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들에게 주어진 복음의 광대하고 영원한 부를 그들에게 전파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그들이 기뻐할 수 있도록 이 목표를 위하여 수고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죽음을 유익이라고 언급했을 때 여기에 복음의 부요가 암시되어 있습니다.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빌립보서 1:21)
오늘날 사람들은 모든 이들에게도 동일하게 죽음이 유익이라는 착각에 빠져 있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이 평생 동안 중범죄를 짓지 않는 한 죽을 때 더 나은 곳으로 갈 것이라고 당연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그런 가정을 하는 것은 얼마나 잘못된 일입니까. 죽음은 손실입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그분의 피로 그들을 구속하지 않는 한 모든 이들에게 죽음은 최악의 손실입니다. 그리스도를 떠나서 죽는 것은 지옥의 형벌과 악하고 경건하지 않은 자들을 위해 예비된 영원한 심판에 던져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믿는 믿음을 통해서만 우리에게 죽는 것이 유익이 됩니다. 오직 우리가 회개하고 유일하며 참된 복음에서 선포된 대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에만 헤아릴 수 없는 구원의 부요함이 우리에게 열리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바울과 그리스도를 신뢰했던 모든 사람들처럼 죽음이 유익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택해야 할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 (빌1:22-23)
바울은 자신의 죽음을 ‘떠남’으로 언급합니다. 여러 주석가들은 "떠나다"는 단어(analuo - 아나루오)가 ‘어떠한 진을 부수는’ 의미와 관련된 단어라고 말합니다. 저는 그 이미지가 믿는 자의 죽음을 어느 정도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만들었던 진영을 깨고 집으로 가는 것입니다. 육신의 장막에 사는 비참함을 뒤로 하고 떠나는 것입니다. 죄에 대한 우리의 힘든 싸움이 끝나게 됩니다. 죄로 인해 저주받은 이 세상에서의 고통도 끝나게 됩니다. 우리 주님의 인도 아래서의 훈련이 모두 완료되어서 (디모데후서 3:16; 디도서 2:12) 마침내 집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낙원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거하며 우리의 영이 완전해지기 위해 집으로 돌아갑니다(히브리서 12:23). 우리는 이 세상보다 훨씬 더 나은 곳으로 가고 있으며, 우리 주님께서 이 세상에 돌아와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시고, 모든 성도를 영화롭게 하시고,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원한 나라를 완성하실 때 우리는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릴 것입니다. 성경은 종종 믿는 자에게 죽음을 잠으로 묘사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셨기 때문에 죽음은 잠처럼 무해한 것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받은 자들에게 사망의 쏘는 것이 제거되었습니다(고린도전서 15:56). 죽음을 그토록 무섭게 만드는 죄에 대한 벌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단번에 영원히 처리되었습니다. 몇 년 전 암으로 큰 수술을 받았을 때, 저는 위험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수술대에서 잠들었을 때 합병증으로 인해 어쩌면 천국에서 깨어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 죽음은 그렇게 나쁘지 않게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에게 우리가 죽는 날은 낙원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날입니다. 우리 주 예수께서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시며 믿음으로 그분께로 돌아선 옆의 강도에게 확신시키셨듯이 말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23:43)
영원한 삶의 부를 보고 그것이 우리에게 속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평생 교회에 다녔고 세례를 받고 성찬에 참여했기 때문에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천국에 가지 않습니다. 그리스도 가정에서 태어났고 평생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서 확실히 자신은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천국에 가지 않습니다. 목사님이 내가 확실히 천국에 갈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에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천국에 가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천국에 가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안에 계시된 대로 예수 그리스도 - 죄에서 부활하신 구세주이자 그 분을 믿는 모든 이의 주님 - 를 영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를 받았다고 말하면서도 성경의 권위를 멸시하고 거부한다면 우리는 그분을 영접하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상상 속의 예수, 존재하지 않는 예수를 믿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친구, 조언자, 조수, 공급하시는 분, 기적을 행하는 분을 예수님으로 믿고 있으나 우리의 ‘주’이신 예수님은 믿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를 다스릴 권리를 포기하시면서도 우리의 죄를 용서하실 의향이 있는 주님은 존재하지 않으십니다. 그러한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실 수 없습니다. 우리가 신약의 증거와 교리에 따라 그리스도 예수가 아닌 우리의 감정에 속한 예수를 고집한다면, 우리는 그를 거부한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위임한 사도들의 증언을 부인한 것입니다. 우리는 구원받는 믿음을 거부한 것입니다. 우리가 확실히 구원받았고 확실히 천국에 갈 것이라고 가정하지 마십시오. 섣부른 가정에 의지하기에는 우리에게 ‘영원’은 너무도 중요한 것입니다.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고린도후서 13:5)
우리는 자신의 건강을 위해 검진을 합니다. 우리는 인터넷으로 여러 의심되는 증상들을 검색합니다. 다양한 전문의들을 만나러 찾아다닙니다. 정기적인 검사와 검진을 받고 그 결과가 나오면 면밀히 살펴봅니다. 왜 교회를 다니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건강은 면밀히 검진하며 확인하면서도 자신이 믿음 안에 있는지 확인하는 데는 관심이 없고 심지어 이것을 저항하는 것일까요? 우리의 영생이 달려있는 문제임을 감안할 때, 우리가 믿음 안에 있는지 살펴보는 것은 우리의 건강을 확인하는 것보다 무한히 더 중요합니다! 말씀으로 우리의 영적 상태를 검사하는 것은 의사가 우리를 검진하는 것보다 무한히 더 중요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거짓 신앙 고백의 증상을 확인하는 것은 생명을 위협하는 질병의 증상을 확인하는 것보다 무한히 더 중요합니다. 이생 너머의 목적지는 우리가 믿음 안에 있는지 없는지의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건강을 우상화하지 않는 한 건강을 조심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어리석음으로 인해 우리의 영원을 살피지 않는 일이 없도록 합시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죽음으로 이 땅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육신으로 계속 사는 것보다 훨씬 나은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것이 그의 소망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교회를 위해서는 자신이 머물러 있는 것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여전히 동료 성도들의 거룩함을 위해 수고해야 했습니다. 이것을 확신한 그는 주님께서 그에게 맡기신 일이 완료될 때까지 이 땅에 자신을 두실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내가 육신으로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내가 살 것과 너희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 너희 무리와 함께 거할 이것을 확실히 아노니 내가 다시 너희와 같이 있음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자랑이 나로 말미암아 풍성하게 하려 함이라…” (빌1:24-26)
이 땅을 떠나서 천국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은 지상에서 계속 사는 것보다 훨씬 낫습니다. 왜 주님은 우리를 데려가셔서 이 세상에서 우리가 겪는 모든 투쟁과 문제에서 쉬게 하시고 그분과 함께 있게 하시지 않는 걸까요? 한 가지 이유는 주님께서 이 땅에서 우리를 통해 하시고자 하는 일이 더 많기 때문이며, 그것은 우리의 동료 성도들을 세우는 일입니다. 형제 여러분, 이 일에 참여하십시오. 집에서든 교회에서든, 배우자, 자녀, 부모, 친구 또는 교회의 동료 성도들과 이 일에 참여하십시오.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 (벧전4:10-11)
우리의 떠나는 날과 시간을 정확히 파악하려는 것은 우리가 해야할 일이 아닙니다. 때때로 우리는 어떻게 그리고 언제 떠날지 걱정하면서 많은 시간을 낭비할 수 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것은 우리에게 맡겨진 일이 아닙니다(신명기 29:29). 우리가 해야할 일은 우리 몸으로 주님을 높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오는 의의 열매를 맺어 그분께 찬양과 영광을 돌리고, 복음의 믿음 안에서 서로를 세우는 일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To Live is Christ, to Die Is Gain
Philippians 1:21-26
21 For to me to live is Christ, and to die is gain. 22 If I am to live in the flesh, that means fruitful labor for me. Yet which I shall choose I cannot tell. 23 I am hard pressed between the two. My desire is to depart and be with Christ, for that is far better. 24 But to remain in the flesh is more necessary on your account. 25 Convinced of this, I know that I will remain and continue with you all, for your progress and joy in the faith, 26 so that in me you may have ample cause to glory in Christ Jesus, because of my coming to you again.
I would like to remind everyone that we are continuing with our series in Philippians, picking up where we left off in the first chapter of this epistle, moving on to verse 21-26.
If you recall from our previous message, there was one goal that predominated the hope and expectation of the imprisoned apostle Paul as he faced his impending tribunal before Caesar: to honor Christ in his body, whether by life or by death.
18 Yes, and I will rejoice, 19 for I know that through your prayers and the help of the Spirit of Jesus Christ this will turn out for my deliverance, 20 as it is my eager expectation and hope that I will not be at all ashamed, but that with full courage now as always Christ will be honored in my body, whether by life or by death. (Philippians 1:18-20)
Paul understood that his tribunal before Caesar was a matter of life or death. Paul would have understood that given what was at stake, the temptation to falter into timidity was a possibility. At the moment of testing, fear could sap Paul's resolve to honor the Lord Jesus at all costs. At the moment of testing, his courage could falter and his testimony could be compromised by a desire to appease man and preserve his life. Yet, the apostle Paul was certain that he would be delivered from that temptation through the prayers of his fellow saints and the help of the Holy Spirit as our Lord promised to provide for his apostles when they testified before governors and kings for His sake (Matthew 10:17-20). As a result of the many prayers made on his behalf and the help of the Spirit of Jesus Christ, Paul's eager expectation and hope was not freedom from his chains but courage to honor Christ in his body, whether by life or by death. If the verdict of Paul's trial before Caesar was life, he wanted to honor the Lord in the way that he lived. If the verdict of Paul's trial before Caesar was death, he wanted to honor the Lord in the way that he died. The apostle Paul was content with either outcome, as the first verse of today's text makes clear:
“21 For to me to live is Christ, and to die is gain.” (Philippians 4:21)
For to Paul, to live is Christ. Christ was the all-consuming purpose for Paul's life. Paul's goal of honoring Christ not only included his courageous testimony concerning the Lord but also the goal of becoming like the Lord (2 Corinthians 3:18; Ephesians 5:25-26; 1 John 3:2-3). While conformity to Christ's likeness includes conformity to His character, it also includes conformity to His purpose. If the apostle Paul was to live, the goal of his labor conformed to Christ's purpose for redeeming His church. Christ, as we were reminded a few weeks ago, gave Himself up for the church that He might sanctify her. “
Husbands, love your wives, as Christ loved the church and gave himself up for her, that he might sanctify her,” (Ephesians 5:25-26)
In conformity to the Lord's purpose for His church, Paul's goal in life was to labor for the sanctification of Christ's beloved church. If he were to live in the flesh, that meant laboring for the sanctification of Christ's church.
“If I am to live in the flesh, that means fruitful labor for me. Yet which I shall choose I cannot tell.” (Philippians 1:22)
That it was primarily sanctification of Christ's church which Paul had in mind when he spoke of his life's labor is made clear in verse 25 of today's text.
21 For to me to live is Christ, and to die is gain. 22 If I am to live in the flesh, that means fruitful labor for me. Yet which I shall choose I cannot tell. 23 I am hard pressed between the two. My desire is to depart and be with Christ, for that is far better. 24 But to remain in the flesh is more necessary on your account. 25 Convinced of this, I know that I will remain and continue with you all, for your progress and joy in the faith, (Philippians 1:21-25)
What was the goal of Paul's labor for his fellow saints? Their progress and joy in the faith. He labored for their growth and maturity in the faith of the gospel. Earlier in this chapter, the apostle Paul said that it was his prayer that the love of the Philippian saints would abound more and more, with knowledge and all discernment.
“And it is my prayer that your love may abound more and more, with knowledge and all discernment,” (Philippians 1:9)
Paul prayed that the Philippian saints would grow in their love for God along with knowledge of His revealed will and discernment for carrying out His will in all their varied circumstances. And what is the result of this growth in love, knowledge, and discernment? The answer:
“10 so that you may approve what is excellent, and so be pure and blameless for the day of Christ, 11 filled with the fruit of righteousness that comes through Jesus Christ, to the glory and praise of God.” (Philippians 1:10-11)
Abounding more and more in love towards God and in the knowledge and discernment of His word results in our capacity to approve of the best course of action amid the various challenges of each day which in turn leads to a pure and blameless way of life which will be rewarded on the day of Christ Jesus. If you recall from our previous study of Philippians 1:10, to lead a pure life does not mean living a sinless life. It does mean leading a life that is thoroughly faithful to God's word. When the lives of the pure are held up to the light of God's word, what is revealed about them is not that they are leading a sinless and perfect life. What is revealed about them is that they are leading a faithful life – faithful to the word of God. The same goes for leading a blameless life. In the original language, the word for blameless is aproskopos which is a compound of “a-” (not) and proskopto (to stumble). The word means, “not causing to stumble” (Strong's Lexicon). A blameless person, if you recall, is a person who does not cause others to stumble through a bad example. Rather, he is a good example to other believers - an example of loving obedience. The apostle Paul labored to build up his fellow saints in the Christian faith – in all of its doctrines and commandments – so that as their knowledge and discernment of God's revelation grew in conjunction with their love for Him, they would reach the point of leading pure and blameless lives, filled with the fruit of righteousness that comes through Jesus Christ. In other words, the goal of Paul's labor for Christ's church was the same as Christ's goal for His church: her sanctification.
Brethren, some if not many in the church are reluctant to make progress in the faith of the gospel. They wrongly assume that all they really need to know of God's word is the bare minimum for making a profession of faith in Jesus Christ. And then they wonder why they are so confused about what God would have them do amid the various challenges and perplexities of their lives. But as we were taught earlier in this chapter and as we are reminded in today's text, it is abounding more and more in love towards God coupled with progress in the Christian faith – both in knowledge and discernment - that results in the wisdom to lead the kind of life all genuine, born again believers long to live: a pure and blameless life filled with the fruit of righteousness that comes through the power of Christ living in us. Without making progress in the truth of God's word, our growth in sanctification will be stunted. Brethren, Christ laid down His life for the church that He might sanctify her. In conformity to Christ, Paul labored for the sanctification of his fellow saints. And that labor has been preserved for us in scripture. The words which our Lord spoke through His apostles are spoken to us today whenever we open our bibles and receive what is written therein for our sanctification.
In addition to laboring for their progress in the faith, the apostle Paul also labored for their joy in the faith.
“22 If I am to live in the flesh, that means fruitful labor for me. Yet which I shall choose I cannot tell. 23 I am hard pressed between the two. My desire is to depart and be with Christ, for that is far better. 24 But to remain in the flesh is more necessary on your account. 25 Convinced of this, I know that I will remain and continue with you all, for your progress and joy in the faith,” (Philippians 1:22-25)
The goal of Paul's work among the saints was to proclaim to them the vast, everlasting riches of the gospel which was theirs in Christ Jesus. He pursued this goal so that they might rejoice. The richness of the gospel is alluded to in today's text when Paul refers to death as gain.
“21 For to me to live is Christ, and to die is gain.” (Philippians 1:21)
People today are under the illusion that to die is gain for almost anybody. They take it for granted that for as long as people do not spend their lives committing heinous sins, they will go on to a better place when they die. How wrong they are to make that assumption. To die is loss - the worst kind of loss - for everyone unless Christ Jesus redeems them by His blood. Apart from Christ, to die means to be cast into the punishment of hell and the eternal judgment reserved for the wicked and ungodly. Only in Christ, through faith in Him, is it true of us that to die is gain. Only when we repent and receive the Lord Jesus Christ as He is proclaimed in the one true gospel, are the unfathomable riches of salvation opened to us so that we can say along with Paul and all who have ever trusted in Christ, to die is gain:
21 For to me to live is Christ, and to die is gain. 22 If I am to live in the flesh, that means fruitful labor for me. Yet which I shall choose I cannot tell. 23 I am hard pressed between the two. My desire is to depart and be with Christ, for that is far better. (Philippians 1:22-23)
Paul refers to his death as a departure. Various commentators mention that this word for “depart” (analuo) was a word that is based on the notion of breaking up an encampment. I think that imagery does convey something of what death is for the believer. It is a breaking up of our encampment and going home. We are leaving behind the miseries of tent life. Our hard struggle against sin is over. The sufferings of life in this world cursed for sin is ended. Our training under the guidance of of our Master is complete (2 Timothy 3:16; Titus 2:12). We are going home at last. We are going home to be with Christ in paradise and to the perfection of our spirits (Hebrews 12:23). We are going to a place far better than this one and in that place we will wait for the redemption of our bodies when our Lord returns to this world to judge the living and the dead, to glorify all His saints, and to consummate His everlasting kingdom in a new heaven and a new earth. Often times, scripture describes death as sleep for the believing. Because our Lord has saved us from our sins, death has become innocuous, like sleep. For those redeemed by the blood of Christ, death'ss sting has been removed (1 Corinthians 15:56). The penalty for our sins which makes the prospect of death so dreadful has been dealt with once and for all through the cross of our Lord Jesus Christ. When I underwent major surgery for cancer several years ago, I understood that there were risks. I understood that there was a chance that due to complications, it was possible that when they put me to sleep on the operating table, I could wake up in heaven. When I looked at it that way, I thought to myself, that isn't so bad! And indeed, for all who trust in our Lord Jesus Christ, the day we die is the day we will be with Christ in paradise. As our Lord Jesus assured the thief who turned to Him in faith even as he hung dying on a cross next to His own,
“Truly, I say to you, today you will be with me in paradise.” (Luke 23:43)
Seeing the riches of eternal life, do not presume they belong to us. No one goes to heaven to be with Christ because they attended church all their life and were baptized and partake of communion. No one goes to heaven to be with Christ because they were born into a Christian family and were told all their lives by those closest to them that that they are definitely Christians. No one goes to heaven to be with Christ because their pastors told them they are most certainly going to heaven. The only way we will go to heaven to be with Christ is if we listen to the word of God and receive Jesus Christ as He is revealed therein - the risen Savior from our sins and the Lord of all. Believe me, if we say we have received Christ Jesus but despise and reject the authority of Holy scripture, we have not received Him. We have received a Jesus of our own imagination, a Jesus who does not exist. We have received a Jesus who may be a friend, advisor, assistant, provider, miracle worker, but who is not Lord. There is no such thing as a Jesus who is not Lord, who is willing to forgive our sins while abdicating his right of command and rule over us. A Jesus who does not exist cannot save us. If we prefer the Jesus of our sentiments rather than Christ Jesus according to testimony and doctrines of the New Testament, we have rejected the Lord as He commissioned and empowered His own apostles to proclaim Him. We have refused the faith by which we are saved. Don't just assume we are definitely Christians and are definitely going to heaven. Eternity is far too important to rest on an assumption.
“Examine yourselves, to see whether you are in the faith.” (2 Corinthians 13:5)
We examine ourselves to see whether we are in good health. We do our research online. We book appointments with various specialists. We submit to routine tests and screenings and scrutinize the results when they are released to us. When we feel unusual, we cannot wait for an appointment and instead, send our doctor a text message through the patient portal. Why are so many in the church vigilant to see whether they are in good health but unconcerned and even resistant to see whether they are in the faith? Given what is at stake, to see whether we are in the faith is infinitely more important than to see whether we are in good health! To allow the word to examine us is infinitely more important than to allow a doctor to examine us. To confirm symptoms of unbelief towards the Lord Jesus Christ is infinitely more important than confirming symptoms of dangerous illnesses. What awaits us beyond this life, whether for far better or for far worse, hangs on whether we are in the faith or not. It is good to be vigilant about our health for as long as we do not make an idol out of it. But let us not be foolish and fail to be even more vigilant about our eternity!
The apostle Paul understood that to die and depart to be with Christ was far better than to go on living in the flesh. So, that was his desire. However, he knew that it was more necessary for him to remain on account of the church. He still had labor to do for the sanctification of his fellow saints. Convinced of this, he was certain that the Lord would keep him on this earth until his work allotted to him was completed.
24 But to remain in the flesh is more necessary on your account. 25 Convinced of this, I know that I will remain and continue with you all, for your progress and joy in the faith, 26 so that in me you may have ample cause to glory in Christ Jesus, because of my coming to you again. (Philippians 1:24-26)
To depart and be with Christ in heaven is far better than to go on living our earthly lives. Why hasn't the Lord taken us to be there with Him where we may rest from the struggles and troubles of sojourning in this world? Well, one reason is because the Lord has more work for us to do here on this earth. Insofar as we are redeemed in Christ, He has given us works to do for the purpose of building up His church. Attend to this work, brethren. Whether it be at home or at church, whether it be with our spouse, children, parents, friends, or fellow saints in the church, attend to this work. It is not our business trying to pinpoint the time and circumstances of our departure. How many believers waste so much time consumed with worry about how and when they will depart. It is none of our business (Deuteronomy 29:29). Our business is to attend to the works He has given us to do for building up our fellow saints. Our business is to honor the Lord in our bodies.